한국 기독교 치욕의 죄악사 2
해방 이후 한국 교회는 어떻게 되었는가?
글 : 정바울 박사한국교회기독교영성총연합회(UCSC)
대표회장
사진설명 : 1938년 제27회 조선예수교장로회는 신사참배 결의를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조선예수교장로회의 총회 이후 찍은 임원진 기념사진이다. 앞줄 중앙에 홍택기 목사, 그 오른쪽이 김길창 목사이다.
우상숭배의 대가로 받은 "은전(가롯 유다의 은전)"을 헤아리던 자들이며, 신사참배를 반대했던 목사들을 이단이라고 했던 자들이다. 사진제공 : 김응호 선생
▲ 북한의 교회
1945년 8월 15일 독립이 된 즉시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에 의해 양분화 되었다. 1953년 7월, 휴전 협정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남한은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할 수 없었다. 단지 북한의 김일성과 미국에 의해서 이 협정은 이루어졌다.
북한과 평양을 고스란히 사단의 세력에게 넘겨준 후, 북한에서의 기독교 탄압은 극에 달했다. 김일성은 1960년부터 대대적인 사상 조사를 실시했고, 그중 가장 뚜렷한 표적이 되는 이는 기독교인이 되었다. 물론 그들은 숙청되었고, 많은 기독교인들은 생명을 내어 던지며 자신들의 믿음을 지켜나갔다.
북한의 기독교 탄압은 참혹한 방법으로 자행되었고, 많은 순교자의 피가 북한에 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숨어서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북한의 지하 교회가 여전히 남아 있으며, 이들은 지금도 생명을 걸고 지하 교회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 남한의 교회
신사참배 문제로 투옥되었던 많은 목사와 성도들이 풀려나자 그들은 교회의 우상 숭배 문제를 직접적으로 지적했다. 그러나 그들은 교회의 중심축이 될 수 없었다.
그전부터 교권을 잡고 있었던 친일 인사들과 교계지도자들이 이미 교회의 중추세력이 되어 있었다. 이들은 신사참배 문제에 대해 의도적으로 회피하였다.
그후 교회는 여러 차례 신사참배의 문제에 대하여 회개할 기회를 가졌었다. 그러나 교회의 신사참배에 직접, 간접적으로 참여한 목회자, 선교사, 장로들의 진정한 공적 회개도 없이, 예수님의 속죄 은혜를 빌미로 자신들의 죄를 합리화 했으며, 심지어 자신들도 시대의 피해자임을 강조했다.
더욱 기막힌 일은 친일파 인사들이 광복 후에도 한국 교회의 교권을 장악하고 교회를 자신들의 입장을 합리화하는 방패로 삼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교회의 죄악은 국가적인 죄악의 과거사를 그대로 방치하게 만들었다.
삼일절이나 광복절만 되면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가 친일 인사들의 청산 문제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과 그들의 자손들은 사회의 요직을 점령하고 정치, 경제, 사회의 곳곳에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과거 자유당 12년 집권 기간동안 친일 인사들은 약 1/3에 달했다. 또한 최근까지만해도 친일인사와 애국 지사 후손 사이에 땅 소송문제가 이슈가 되었었다.
교회의 청산되지 않은 죄악은 현 사회에 그대로 투영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해방 이후 남한 교회는 신사참배의 문제로 쟁론에 들어갔다. 남한 교회는 마음을 하나로 하여 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통회하고 눈물로 기도한 것이 아니라, 서로 잘못을 비방하고 다투며 1950년까지 5년동안 싸우기에 이르렀고, 그야말로 교회는 분열의 시대에 접어들게 되었다. 우상 숭배가 낳은 씨가 싹을 틔운 것이다.
이 다툼은 1950년 4월 대구 제일 교회에서 대한 예수교 장로회 46회 총회를 통해 극에 달했는데, 신사참배를 자행한 목사들은 ‘우리도 양떼를 흩어버리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애쓰고 수고했다’, ‘교회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가 없었다’고 자신들의 죄를 정당화 했고, 신사참배를 거부한 목사들은 ‘너희는 회개해야 한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한국 신학 대학의 창립자였던 김재준 박사가 ‘자유주의다, 아니다’하는 문제 때문에 서로 시비가 붙었고, 급기야 서로 자기 주장을 하기 위해 강단으로 몰려 나온 사람들은 성찬상을 뒤집어 엎는, 참으로 부끄러운 일을 벌이기에 이르렀다. 교회 안에서 이 일이 있은 후 약 2개월 후, 6.25전쟁이 터졌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임시 정부는 부산으로 옮겨가고, 이승만 대통령은 모든 목사님들에게 ‘나라를 위해 우리 모두 기도합시다’라는 통지를 했다.
이 때 끝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영적 순결을 지킨 고신파가 갈라져 나가게 되는데, 장로회 총회측과 고신파는 서로를 비방하며 또다시 공산당이다 아니다 하는 문제로 다투며 분열된 교회의 모습을 보였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교회는 하나된 모습을 보이지 못한 것이다.
분열된 교회가 영적 힘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여러 신학자들과 한상동 목사를 비롯한 주남선, 손양원 등 출옥 목회자, 성도들은 동족 상잔의 비극이 교회의 우상 숭배 죄악과 미움과 다툼, 분열로 일관한 교회의 죄악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즉 분단의 역사는 우연히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교회의 우상숭배와 분열로 인해 일어난 것이라는 지적이다.
6·25 전쟁 이후 한국 교회는 어떻게 나아가고 있는가?
6·25의 폐허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우리를 도우실 분이 전능하신 하나님 한분 뿐임을 인정하며 속속 교회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헌신하는 많은 목회자들이 일어나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며, 상처 받은 많은 영혼들을 주님의 품으로 인도했다.
그런데 한국 교회는 또 한차례 하나님 앞에 중한 죄를 범하게 된다. 1959년 대전에서 열린 대한 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다시 ‘공산당’에 대한 문제로 두 파가 나뉘어 싸움을 하다가 다시 성찬상을 뒤집어 엎은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 앞에 또다시 분열된 모습과 정죄하고 다투는 모습을 보이며,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었다. 총회는 시작도 못하였고, 그 일이 있은 몇달 후 4.19와 5.16 사건이 일어나 전국은 또 한차례 피로 물들게 되었다.
이러한 일은 1979년 9월에 있었던 성회에서 또 발생했는데 성찬상을 뒤엎는 사건이 또다시 일어나게 된다. 한 달이 못되어 10.26과 5.18 사건이 일어나게 되고 교회는 자꾸만 분열과 다툼, 미움으로 일관된 모습으로 세상에 비추어 졌다.
그러나 이런 역사 속에서도 한국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입고, 1960년대 강한 성령의 역사를 통해 놀라운 대 부흥기를 맞이하게 된다.
갈급한 영혼들이 몰려와 뜨겁게 기도하고 찬양하며 간절히 하나님을 찾았다. 교회에 급하고 강한 성령이 불같이 임하고, 수많은 회심자들이 회개하고 눈물을 흘리며 주님 앞에 나와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나자 목회자들이 방언으로 기도하는 성도들을 제지하며, 교회 안에서의 성령의 역사를 제한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표면적 성장을 계속해서 이루어 나갔다.
표면적 성장이라고 밖에 명할 수 없는 이유는 한국 교회의 놀라운 성장에 비해 교회가 사회에 주는 영향력은 최하위였기 때문이다.
고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는 곧바로 경제 성장으로 이어졌고, 당시 경제 성장에 힘입어 교회의 부피는 커져갔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기독교 국가라는 타이틀 아래 부정부패, 군사 독재, 금권 선거, 성범죄, 사기, 폭력, 인권 유린, 빈부 격차, 윤리 의식의 부재, 자살이라는 부분에서 상위를 달리는 아이러니한 사회를 만들기 이르렀다.
우리 나라 교회는 그들이 제시하는 복음과는 거리가 먼, 세상이 교회를 걱정해 주는 상태까지 전락해 있다.
한국일보사가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일반 불신자들의 교회와 성도들에 대한 인식은 다음과 같았다.
(1) 기독교인은 더 애국적인가?
-> 아니다
(2) 기독교인은 더 양심적인가?
-> 아니다
(3) 교회가 더 많아지기를 원하는가?
-> 아니다
또한 90년대 이른바 ‘옷 로비 사건’을 비롯해 이단 파문 문제, 북풍 사건, 한국 최고 교회 목회자들의 비리 혐의 연루, 성추행 사건, 5·6공 독재 정치권과 연루된 비리 기독교인, 무분별한 이단 정죄로 서로 싸우고 죽이는 모습은 교회가 사회로부터 외면당하는 이유를 제시하기에 충분했다.
사회 정화 능력을 상실한 채 기업화되어가고 부피 키우기에 급급한 교회들을 보며 많은 세상 사람들은 교회를 향해 마음과 생각을 닫아 버렸다.
현재 한국 교회는 사회를 정화시키고 비전과 소망을 제시할 영적, 도덕적, 사회적 역량이 없다. 한국 교회의 성장을 비약적 성장이 아닌 비만이라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그만큼 우리 한국 교회는 하나님의 모든 뜻과 비전을 펼칠만한 영권을 상실해 버렸다.
정바울목사
2004-08-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