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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갱신과 부흥을 위한 방향제시 I

한국 교회 미래 위해 성령 운동을 통한 기도, 전도, 말씀 운동 전개해야
* 글 : 최종진 박사 / 서울신학대학교 총장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장소와 시간을 통합하는 문명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 첫째가 “텔레커뮤니티”(tele-communities )로서 현대 텔레커뮤니케이션의 능력으로 만들어지는 새로운 현상이며 동시에 하나 이상의 “장소”에 살게 되는 데서 형성되는 것입니다.

텔레커뮤니케이션은 속도(speed), 방대한 능력(volume capa-city), 쌍 방향성 또는 상호작용능력(interactivity), 네트워킹, 부호매김능력(encryption ability), 잠정적 편재(potential ubiquity) 등을 말하며 텔레커뮤니티를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모타일” 사회(emotile society)로 개인적 복지에 대해 강화된 관심을 나타내는 ‘이모션(emo-tion)’ 이라는 단어와, 빠른 움직임과 빠른 변화를 나타내는 ‘모틸리티(motility)’ 라는 단어를 합하여 현대사회의 지배적인 특징에 대한 신조어(新造語)입니다.

즉 노동(work), 시장(markets), 방법(methods)의 세 영역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특히 개인적 서비스(personal services), 재정적 보장(financial security), 개인적 보장과 안전(per-sonal security and safety), 종교와 영성(religion and spirituality)의 기회가 많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은 새로운 환경에서 기계와 더불어 살아야 하는 존재(cyborg)가 이미 되어있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컴퓨터화가 날로 업그레이드 되며 그것을 돕는 테크놀로지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발생한 생명문화(生命文化)가 형성된 이후 인류는 무서운 변화 속에 살고 있습니다. 엘빈 토플러(Alvin Toffler)의 “제3의 물결”에서는 제2물결의 부호인 표준화, 전문화 또는 분업화, 동시화, 집중화, 거대화, 중앙집권화를 파괴하는 현상을 보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탈 표준화, 탈 전문화 또는 탈 분업화, 탈 동시화, 탈 집중화, 탈 거대화, 탈 중앙집권화의 방향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즉, 탈 표준화는 개별화의 방향으로, 탈 전문화 또는 탈 분업화는 일반화를 통해 통합적 방향으로 향하게 되었으며, 탈 동시화는 유동적인 구성을 통해 러시아워와 같은 개념을 없애려고 하고 있으며, 탈 집중화는 대체 에너지 개발과 같은 노력을 통해 다변화의 방향으로 가게하고 있으며, 탈 거대화는 팀의 작업을 통해 재구성하고 구조조정을 통해 재벌의 해체와 같은 결과를 가져오게 하고 있으며, 탈 중앙집권화는 지방분권화를 통해 민주화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 피부로 느끼는 현상입니다.

개인(the individual)에서 보면, 열심히 일하는 것에서 초 효과성으로, 안전에서 불확실성으로, 신앙에서 소망으로, 충성에서 용기로 변형되면서 지탱, 지속 가능한 사회의 방향으로 조정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들은 포스트모던의 현상과 일치합니다. 우리는 오늘의 역사를 깊이 인식하고 역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시대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느냐하면, 포스트 모더니즘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에 요청되는 영적지도자는 자기가 살고 있는 지금의 시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포스트 모더니즘이 진리냐?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모든 현상이 다 포스트 모더니즘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전체가 흘러가는 과정을 우리는 포스트 모더니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포스트 모더니즘의 전 시대가 모더니즘(현대주의)이라면 모더니즘 전시대는 프레 모더니즘(전 현대주의)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포스트 모더니즘을 한국말로 번역할 때 후현대주의라 하지 않고 탈현대주의라 번역합니다. 왜냐하면, 모더니즘시대 때에 통용되던 상식이 포스트 모더니즘에는 통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더니즘 시대 때 굉장히 뛰어난 사람이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에는 뛰어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더니즘시대는 가장 중요한 모든 지식을 대표하여 ‘아! 저 사람 참 똑똑해!’ 너무 많이 알고 있는 자로 어떤 기능을 많이 쓰는 사람이 유능한 사람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포스트 모더니즘에는 사정이 다릅니다.

예를들면 이렇습니다. 개미와 베짱이가 있어요. 이 개미는 굉장히 열심히 일합니다. 상사의 비위를 맞추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 여름에도 한숨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합니다. 그늘에 쉬고 싶은데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합니다. 그런데 베짱이는 그 때 막 놀아요. 노래만 하고 막 놀고 있습니다. 오늘날 누가 되어야 합니까? 당연히 개미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 말을 하는 분은 바로 모더니즘에 속하여 있고 그런 대답은 모더니즘적 답변입니다. 그런데 포스트 모더니즘에는 어떻게 이해하냐하면, 그 개미는 40대 후반에 가서 암이 걸려 죽었어요.

그런데 늘 놀고 노래하던 베짱이는 노래하는 특기가 인정되어 훌륭한 가수가 되었습니다. 인기가 대단해 갑자기 갑부가 되어 부러움의 대상이 됩니다. 이것이 포스트 모더니즘입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바로 개성이 독특하고 저 사람이 정말 “무엇이 특이하네”가 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흘러오던 대표적인 문화나 권위에 대하여 거부합니다. 심지어 모더니즘시대에는 지극히 남성중심적이었는데 포스트 모더니즘에 들어오면서 여성중심적이 됩니다. 여자들이 못하는 것이 없고 지도자로 여자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오늘날 교회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어느 시대에 사는지를 자신들은 인식하지 못하지만 감각적으로, 체질적으로 포스트 모더니즘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시대를 가정을 중심으로 계산한다면 모던과 포스트모던이 공존하는 이상한 갈등구조를 가지고 살아가는 시대입니다.

요사이는 초등학교 6학년과 5학년 학생 사이에도 세대 차이를 느낀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모가 아들 딸하고 대화가 안되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아예 대화가 통하지 않습니다.

본질적인 대화는 안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포스트 모더니즘의 현상입니다. 그러므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인 교회구성원에 대한 이해가 아주 중요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오늘날 중요한 현상이 하나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 포스트 모더니즘과 만나는 하나님 한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놀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날의 포스트 모더니즘이야말로 성령께서 역사하시기가 가장 쉬운 세대이고, 성령의 언어로 하나님께서 포스트 모더니즘의 현대인하고 만나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성부 하나님의 전능의 하나님, 야훼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성자 하나님이 오셔서 인간과 만나시고 함께 하셨다면 오늘의 시대는 보혜사 성령의 시대입니다. 특별히 포스트 모던시대에는 더욱 성령 하나님이 특별히 역사하시는 시대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령에 노출된 시대입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이 위기인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의 기회입니다. 복음이 매우 분명하게 들어오고 그것을 선언하고 그대로 살아갈 수 있는 매우 자유로운 시대가 또 동시에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입니다.

그래서 엘빈 토플러(Alvin Toffler)의 “제3의 물결”에서 제5의 물결의 시대는 ‘영성의 시대’로 보고 있습니다. 인간이기에 가지는 영적 목마름이 더욱 갈급한 시대가 될 것입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또다른 특별한 현상은 과거, 현재, 미래라고 하는 역사적 연속성이 언젠가부터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부모 세대에는 과거가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런데 포스트 모더니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과거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엄마, 아빠가 과거에 어떻게 살았느냐가 젊은이들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은 “나는 어떻게 살았는지 아냐?”하며 늘 옛날 얘기를 해 줍니다. 엄마, 아버지에게는 쌀밥이나 호떡이 너무나 중요했고 추억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젊은 세대는 그게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햄버거나 콜라에는 조금 관심이 있습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대표적인 영화가 있다면 ‘쥬라기 공원’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 과거와 현재와 최첨단의 미래가 영화속에 막 범벅이 되어 돌아가고 있습니다. 포스트 모던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그게 너무나 재미있습니다. 역사적으로 그들에게는 혼돈이 전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모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저게 무엇이냐 이해가 안 되고 재미가 없습니다.

장면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 고대적 사건과 최첨단의 컴퓨터와 헬리콥터와 그 공룡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느냐 이해가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별 문제가 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이 왜 교회를 떠납니까? 젊은이들의 언어를 잃어버리기 때문입

2004-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