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하나님의 계획설에 대한 터무니 없는 주장과 5대 교리 허구성에 대한 연구
마귀를 추종해도 칼빈주의에서는 구원을 얻는다, 마귀가 인간 구원을 활동한다는 괴변
1. 칼빈이 주장한 명백한 칼빈주의 계획설의 허구(1) 사탄에 의해 하나님의 계획이 매일 온통 뒤흔들린다는 칼빈의 허구적인 주장
칼빈주의의 기본원리는 창세전에 불변적으로 확정했다는 완전한 계획이다. 이것이 모든 칼빈주의의 신앙원리의 바탕이고 신앙의 근거이다. 더구나 그것이 절대주권으로 한 것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들이 항상 주장하는 것이 ‘절대’인데 바로 그 절대주권으로 계획을 세웠고, 그것은 누구도 방해하거나 침범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획은 절대적이다. 발생하는 모든 것을 전부 포함한다.’(G. I. Williamson. op. cit. p.49.)는 칼빈주의,
그는 ‘하나님이 절대적 계획을 세우시고 또한 우주 만사를 그 계획대로 진행시킨다는 것은 그의 완전선의 한 면이 된다.’(L. B. Bottner. op. cit. p33)고 하였다. 그만큼 완전한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칼빈은 결정적으로 ‘우리가 매일 겪는 사탄의 방해는 하나님의 계획을 전면적으로 온통 뒤흔들어 놓기 때문이다.’(John Calvin. op. cit. 기독교문화협회. p.237.)라고 주장한다.
칼빈주의가 여기서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사탄은 매일같이 칼빈주의 하나님의 계획을 온통 뒤흔들어 놓고 있다는 것이다. 칼빈과 칼빈주의 자들을 자신들의 하나님의 계획이 완전하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자신들의 또 다른 교리적 주장으로 보아도 터무니없다는 것이 드러나고 만다.
왜냐하면 칼빈이 주장하는 그들의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은 사탄에 의해 매일 뒤 흔들리는 계획으로써 그만큼 믿을 수 없고 사탄에 의해 휘둘려진 계획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칼빈과 칼빈주의의 실토는 몇 가지 결정적인 허구를 드러내 주고 있다. 칼빈은 사탄의 행위가 어디서 나온다고 주장하는가?
기독교 강요에 보면 ‘사탄이 하나님께 대하여 격렬하게 또 고의적으로 반항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사악함에서 나오는 것이다’(Calvin. op. cit. Vol 1:14:17.)라고 하였다.
그래서 ‘악령은 불경자들을 정복하여 끌고 다니며, 그 영혼과 육체를 학대하고, 노예처럼 저들을 능욕하여 갖가지 수치스러운 행위를 일삼게 한다.’(Ibid. Vol 1:14:18)라고 주장하는데 바로 이와 같은 영이 ‘매일 하나님의 계획을 온통 뒤 흔들어 놓는다’는 것이다.
(2) 칼빈주의 하나님의 계획은 불확실한 계획이라는 증거
사탄이 하나님의 계획을 매일 흔들어 놓는다. 칼빈과 칼빈주의가 외치는 계획설에 대한 작정설의 주장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불변적인 것이 아니라 매일 같이 바꾸어져야만 하는 불완전한 계획들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매일 사탄이 뒤 흔들어 놓은 계획이라는 것은 확실한 계획이 아니라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은 우리와 같이 매일 매일 계획을 세우지 않으신다’(G. I. Williamson. op. cit. p.47.)고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사탄에 의해 매일 계획이 온통 뒤흔들리고 있기 때문에 온전한 계획이 아닐 뿐만 아니라 다시 세워야만 하는 계획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3)칼빈주의 하나님은 사탄에게 휘둘리는 절대자가 아니라는 증거
매일 같이 사탄에 의해 뒤흔들리는 계획은 창세전에 세운대로 진행시켜 나갈 수 없는 나약한 존재자라는 것을 말한다. 칼빈은 ‘매일 겪는 사탄의 방해는 하나님의 계획을 전면적으로 온통 뒤 흔들어 놓기 때문이다.’( John Calvin. op. cit. 기독교문화협회. p.237.)라고 실토한다.
여기서 다른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같은 책 40쪽에서 우스꽝스럽게 주장하기를 ‘가장 하찮은 우연 하나라도 신의 계획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다.’ 라고 하였는데 과연 칼빈의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에 따라 왜 사탄으로 하여금 자신의 계획을 매일 온통 짓밟도록 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괴변이라는 결론 밖에 나오는 것이 없다.
칼빈주의가 내세우는 일관된 주장은 하나님은 이에 계획대로 모든 것을 진행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사탄도 자신들의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허구라는 것은 칼빈의 계획설의 특징에서 잘 나타난다.
칼빈주의 하나님은 사탄에 의해 매일 그의 계획, 다시 말해 자신의 뜻대로 무슨 일을 해 나가는데 문제는 결정적으로 사탄에 의해 온통 방해를 받으며, 치명적으로 방해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칼빈주의 하나님이 주는 약속은 항상 사탄에게 결정적으로 뒤흔들려 나오는 것이기에 그것은 믿을 수 없는 것들이다.
물론 구원에도 마찬가지이다. 사탄이 온통 뒤흔들어 놓는데 그 계획을 어떻게 믿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하나님의 계획이 절대적이고 완전하다고 주장하지만 허구적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앞과 뒤가 전혀 맞지 않는 허구적인 주장을 가지고 기만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그리고 사탄에 의해 매일 온통 뒤 흔들린 계획 속에 이끌어져 감으로 칼빈주의 하나님은 절대자도 아니고 성공자도 아니다.
그는 사탄이 뒤흔드는 대로 쫒겨 다니고 사탄에게 좌절한 실패자이며 패배자라는 것을 칼빈 자신이 증명한다. 칼빈의 하나님은 사람에게 찬양을 받을 자격도 없는 별 볼일 없는 신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미치광이일 것이다.
(4)사탄에 의해 매일 온통 뒤흔들려지는 칼빈주의 하나님
사탄에 의해 매일 온통 뒤 흔들리는 칼빈주의 하나님은 사탄에게 매일 휘둘리며 끌려 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매일 사탄에게 패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 확실히 알 수 있는 한 가지는 사탄이 칼빈주의 하나님보다 더 큰 존재이거나 강한 자라는 것이다.
이것은 칼빈주의 하나님이 그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이 절대주권자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칼빈의 하나님은 사탄에 의해 매일같이 좌절하고 자신의 계획조차 매일 온통 뒤흔들려야 하는 사탄보다도 약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사탄에게 뒤흔들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설사 칼빈주의 하나님이 사탄에게 자신의 계획에 대하여 매일 온통 뒤흔들리라고 하는 예정의 사명을 주었다고 하더라도 어떻든 칼빈주의 하나님은 사탄에게 온통 뒤 흔들리는 계획을 가졌다는 것은 그만큼 황당한 계획이라는 것 외에 다른 뜻이 존재할 수 없다. 계획이 온통 뒤 흔들릴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온통 뒤 흔들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칼빈이 사탄의 방해가 하나님의 계획을 온통 뒤흔들어 놓는다는 말은 칼빈의 실수투성이 말에서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말을 내놓을 수 밖에 없는 피치 못할 배경은 허구이기 때문에 나온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아니라도 허구이다.
2. 마귀가 인간구원을 위해 활동한다는 칼빈주의 구원론
(1)마귀가 인간 구원을 위해 활동한다는 칼빈과 칼빈주의의 주장
칼빈주의가 주장하는 바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마귀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 활동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조석만. op. cit. p.88.)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칼빈주의자들이 들어도 황당한 주장이지만 이 주장은 칼빈주의를 말하는 엄연한 기본사상 가운데 하나이다.
칼빈주의가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단순한 실수도 아니며, 문구를 물고 늘어지는 차원에서 칼빈주의를 추궁하는 것도 아니다.
칼빈주의에서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마귀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 활동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구원론 사상은 칼빈주의의 저 깊은 곳의 저의를 끄집어 낸 핵심적인 교리이다.
이와 같은 주장이 잘못된 것 같지만 자신들의 입으로 직접 밝힌 바와 같이 그것은 자신들의 교리적 실체를 사실 그대로 말해 주었을 뿐이다.
앞에서 쯔빙글리가 ‘사람은 인간의 구원이 오직 하나님의 의지에 달려있기 때문에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하나님이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사람은 누구라도 구원받을 수 있다.’(김장수. op. cit. p.122.)라고 했을 때 이미 짐작을 하겠지만 예정론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사실상 필요 없다.
예수 없어도 얼마든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칼빈주의 예정론의 속성이며 특징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칼빈주의 예정론에는 그 교리가 형성될 당시 이교도적 체계 위에 예수를 형식적으로 끼워 맞춰 놓은 것이기 때문에 예정론이 주장하는 논리대로 밝혀 들어가면 예정론에는 예수가 없다.
이것이 예정론의 특징이다. 예정론에 남는 것은 예수 없는 오직 하나님의 의지’라는 것뿐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의지라는 것도 그 정체를 가려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예정론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의지라는 것도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의지와 무관하기 때문이다.
칼빈의 예정론이 말하는 하나님
칼빈
2005-03-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