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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주의자청교도들의 인간사냥과 목적

칼빈의 후예들로 이어진 인간 살상의 실화
* 유럽 각국에서 자행된 칼빈주의자들의 인간사냥

칼빈의 사상을 이어받은 칼빈의 후예들은 어떠했는가?

칼빈이 사람 죽이는 것을 보고 그와 같은 행위는 잘못된 것이라고 단정하고 이를 수정하여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존중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도록 그리스도 예수의 가르침을 참으로 실천하였는가?

칼과 자의적인 칼빈의 교회계율을 앞세워 제네바시를 장악한 칼빈은 불과 1만여 명이 조금 넘는 사람이 사는 제네바 시를 그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갔다.

칼빈의 교리와 행위를 보고 칼빈 사상을 이식한 대표적인 나라로는 영국, 스코틀랜드, 스위스 등이 있는 데 이상은 더욱 번져 나갔다.

그의 후예들은 과연 어떻게 행하였는가?


1. 유럽에서 자행한 청교도들의 마녀사냥

1) 개신교의 마녀사냥과 칼빈주의자들의 마녀사냥

결론부터 말하자면, 칼빈의 사상과 교리를 이어받은 그의 후예들 역시 사람을 참혹하게 죽이고 무차별적으로 죽이는 역사를 칼빈 이상으로 자행하였다.
카톨릭이란 교리적 세계관과 인간사냥의 종교재판과 마녀사냥, 그리고 부패한 종교를 벗어 던지고 신앙의 자유를 외치며 뛰쳐나온 신교에서도 동일하게 외쳐지고 자행된 일은 참으로 아이러니 한 일이었다.

하지만 카톨릭의 강력한 교리적 세계관적 영향하에서 자라나고 보고 익혀온 신교 지도자들의 배경의 면면을 살펴보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프로테스탄트가 특별히 심화된 신앙에 입각했다고 볼 수 없으며, 프로테스탄트의 모든 교파가 개인의 자유와 권리의 발전에 긍정적인 것도 아니었다.

종교적 관용 역시 오랜 종교분쟁에 지친 끝에 생겨난 것이다.

칼빈 역시 사회 통제를 위해 당시 대중적이던 마녀사냥에 집착했다'(이혜령외 7人, op.cit. pp.430-431)고 증언하고 있다.

'마녀사냥의 전성기는 1560년에서 1660년이었다. 프로테스탄트와 카톨릭의 갈등이 증가하고 악화되면서 전쟁으로까지 치닫게 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A History of Witchcraft', Jeffrey B.Russell. '마녀의 문화사. 다빈치. 2001.6.30. p.142-144)
'프로테스탄트가 카톨릭에 뒤질세라 이 전통(마녀사냥)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16세기에는 종교개혁이 불러일으킨 종교적 갈등, 민중운동, 전쟁 등이 마술을 태동시킨 사회의 긴장 상태를 더욱 악화시켜, 온갖 종파의 기독교들에 의한 마녀 고발이 현저히 증거하였다('A History of Witchcraft', Jeffrey B.Russell. '마녀의 문화사. 다빈치. 2001.6.30. p.143)고 진술한다.

칼빈의 마녀사냥과 인간사냥은 카톨릭 못지 않은 잔악성과 넓은 지역에서 자행되었다는 점에서 칼빈사상의 내면적 특성이 어디에 있는가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칼빈주의자들에 의한 인간사냥의 범위는 개신교 중에서도 가장 잔악하고 광범위하게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1) 마녀사냥의 기원 :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마녀를 사냥하라는 가르침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이름으로 한 두 사람도 아니고 무차별적으로 마녀를 살상하는 행위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아니다. '마귀나 마녀론은 본래 민간전승이었다.'('A History of Witchcraft', Jeffrey B.Russell. '마녀의 문화사. 다빈치. 2001.6.30. p.162)

카톨릭도 그러하지만 칼빈주의자들이 벌인 마녀사냥, 인간 사냥은 그 기원도, 행위도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역사가들은 이 사건들을 두고 냉정히 평가하기를 '그리스도교가 말살해 버린 원시종교(민간전승)의 부활이라고 하였다.'('History of America', Andre Maurois, '미국사' 기린원.1988.11.30. pp.80)고 그 기원을 말해 주고 있는데, 어이없는 것은 기독교가 말살해 버린 민간 전승의 악습을 이제는 도리어 기독교가 앞장서서 자행하였다는 것이다.

기독교가 민간전승에 지나지 않는 원시종교의 노예가 된 것이다. 바로 설 수 없는 교리에 의해 양산된 구부러진 역사의 산물이다.


(2) 마녀사냥의 정의 : '마녀란 악마를 예배하는 종파의 신자이며, 밤에 모이고, 입문식을 거행하며, 악마와 성적 관계를 가지며 희생양을 바친다는 대륙의 관념이 그것이었다.'('A History of Witchcraft', Jeffrey B.Russell. '마녀의 문화사. 다빈치. 2001.6.30. p.174)

'악마의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장면을 들어보라면 분리파 교회들 신도들, 이교도들, 그리고 마녀로 간주되었던 자들을 처형했던 일일 것이다.

말도 안되는 고발이 난무했고, 사람들은 그들이 매우 음탕한 종교의식으로 악마를 숭배한다고 하였고 될 수 있는 한 가장 추잡하고 괴이한 악마와의 소통을 묘사하기 일쑤였다.

마술과 악마의 힘에 대한 일반적인 믿음이 존재했던 시대에 사탄을 섬기다는 고발당할 가능성으로부터 안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The history of the Devul and the Idea of Evil', Paul Carus. 著. 2003.10.20. 더불어 책 p.343)는 것이었다.


(3) 마녀사냥의 목적 : 마녀사냥의 목적 가운데 두드러진 목적은 역시 거룩한 야심가들의 목적이나 개인적인 복수심을 채우기 위해 사용된 예가 적지 않다.

폴 카루스는 '마녀 처형은 삐뚤어진 사악한 사람들이 목적으로 달성하거나, 어떤 개인적 복수심을 채우기 위한 일종의 편안한 무기가 되기도 하였다.'('The history of the Devul and the Idea of Evil', Paul Carus. 著. 2003.10.20. 더불어 책 p.368)고 한다. 실제로 이러한 목적은 칼빈주의에서 더 많은 비중으로 적용되었다.

'이단자라는 호칭은 오늘날 너무나도 치욕적이고 두렵고 경멸할만한 것이고 무시무시한 것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누군가가 자신의 개인적인 원수를 없애 버리고 싶다면 아주 쉬운 방법이 있다. 즉 그를 가리켜 이단자로 의심된다고 말하면 된다.'('Stefan Zweig. op.cit. p.184)고 하였다.
전자든 후자든 모두 상대방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이라는데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2) 개신교 칼빈파와 마녀사냥


(1) 칼빈파들의 마녀사냥

유럽지역에서 칼빈 파는 개신교 가운데 마녀사냥 인간사냥을 대규모로 벌인 가장 대표적인 교파이다.

'16세기의 프로테스탄트는 합리주의자가 아니었다. --칼비니스트는 마녀를 불사르거나 교수하였다'('A History of Civilization' Crane Brinton외 2인. 世界文化史, 한국版, 을유문화사. p.111)고 역사는 확인시켜 주고 있다.

카톨릭과 칼빈파들이 자행한 마녀재판의 건수 : '칼빈 파가 우세한 지역에서 마녀재판의 건수는 다른 곳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Jeffrey B.Russell. op.cit. p.143)라고 말한다.

'잉글랜드에서는 1640년대 대규모 마녀사냥을 경험했고, 스코틀랜드는 16세기 말과 17세기 초 전역에서 겪었으며, 메사츄세츠의 세일럼에서는 1692년 그 유명한 마녀사냥을 경험했다.'(Brian P.Levack. op.cit. p.271)

이들 지역에서의 마녀사냥의 특징은 주로 청교도들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개신교 가운데 카톨릭은 그대로 답습하여 잔악한 종교재판과 마녀사냥을 통해 인간사냥을 가장 대표적으로 자행한 인물과 교단을 꼽으라면 단연코 칼빈과 그의 후예들을 꼽지 않을 수 없다.


(2) 카톨릭과 칼빈파의 마녀사냥의 잔악상에 대한 비교

개신교의 인간사냥은 오랜 전통의 카톨릭과 다를 바가 없었다.
역사가들 역시 이를 확인해 준다. '프로테스탄트는 카톨릭교도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잔혹하게 마녀들을 재판에 회부했다.'(Jeffrey B.Russell. op.cit. p.142-144)

특히 칼빈주의자들의 마녀사냥은 신교 가운데서도 가장 대표적으로 이루어졌다. 칼빈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국가에서는 예외없이 이루어졌다.

개신교와 카톨릭의 종교갈등이 상존하는 지역에서는 더욱 극심한 살상들이 자행되었는데 성직자들도 그러했지만 일반인들 사이에도 서로에 대한 인간사냥에 극심하게 이루어졌음을 암시해 주는 것이다.

'종교적 분쟁에 강력한 사회적 대립이 뒤얽힌 곳, 폭풍, 전염병, 기근과 같은 재해가 사회적 긴장을 부채질 한 곳, 또 프랑스처럼 이단심문의 오랜 전통으로 법에 의한 마술 억압의 기초가 형성되어 있는 곳에서는 그 광기가 더욱 극심했다.'(Jeffrey B.Russell. op.cit. p.144)고 증언한다.

이러한 관행 내지 마녀 사냥은 어김없이 칼빈이 통치하던 제네바에서도 적용되었다.

페스트 균이 유럽에 퍼졌을 때, 제네바 시에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그를 덮어 씌워 대규모 마녀사냥이 이루어진 것이다. 흑사병이 퍼졌을 때, 이 균을 퍼뜨렸다는 마녀를 찾아내는 방법도, 처형도 칼빈파나 카톨릭에서 행한 것을 보면 별로 다를 바가 없다.



2. 유럽 각국에서 칼빈주의자들이 자행한 마녀사냥


제임스 6세(Paul Carus. op.cit. p.402-404)는 학식이 풍부한 마녀사냥의 지지자였다.
칼빈

2005-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