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와 스코틀랜드에서 자행된 칼빈주의자의 인간사냥마녀사냥
칼빈이 외치는 교리나 자행한 만행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와 전혀 무관한 교리와 행위일 뿐이다
* 유럽 각국에서 칼빈주의자들이 자행한 마녀사냥제임스 6세(Paul Carus. op.cit. p.402-404)는 학식이 풍부한 마녀사냥의 지지자였다.
제임스는 1560-1592년 북 베릭셔 주에서 마녀재판을 경험한 이래 마술이 실재한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다. 질리 던컨이라는 젊은 여자가 병자를 고칠 수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질리의 고용주는 그녀가 악마의 힘을 사용하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생각하고 그녀가 자백할 때까지 직접 고문했다.
질리가 악마의 도움을 받아 왔다는 자백을 하자 의기양양해진 고용주는 그녀를 재판소로 넘겼다. 거기서 다시 고문 위협을 당한 질리는 에딘버러 시내와 근교에 사는 많은 남녀에게 죄를 뒤집어 씌웠다.
그들 중에는 아그네스 심프슨이라는 교양있고 평판도 좋은 중년 부인이 포함되어져 있었는데, 왕(제임스 6세 후에 영국의 제임스 1세가 됨)은 그녀를 직접 취조했다.
그녀가 자백을 거부하자 취조관들은 그녀를 벌거벗겨 온 몸의 털을 밀어 버리고 악마의 표식이 발견될 때까지 철저하게 몸수색을 했다.
‘입 안에 마녀의 재갈이 물린 채 그녀는 독방 안에 매달렸다. 그것은 날카로운 갈퀴가 네 개가 달린 기구였는데, 그 중 두 개가 현쪽을 향하도록, 나머지 두 개는 뺨 쪽으로 향하도록 해서 입안에 끼워졌다. 그녀는 잠을 잘 수도 없었다.’고 한다.
결국 그녀는 자백했음은 말 할 것도 없다. 그녀는 많은 남녀가 할로윈 축제 때, 배를 타고 북베릭으로 모여들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춤을 추면서 검은 초가 밝혀진 교회로 들어가 남자로 변신한 악마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그 둔부에 입을 맞췄다.
마녀들은 덴마크로 건너갈 때 폭풍을 일으켜 그가 탄 배를 침몰시킬 음모를 꾸몄다. 만일 이것이 실패하면 아그네스가 두꺼비의 피로써 왕을 해치는 주술을 행할 계획이었다. 아그네스와 다른 피고들에게 나온 증거를 근거로 다수가 화형대로 보내졌다.
제임스의 주목을 끈 이 재판은 이 후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Jeffrey B.Russell. op.cit. p.166-170)
2) 스위스에서 자행된 청교도들의 인간사냥
(1) 제네바에서 세달 동안에 자행된 500명의 마녀사냥
폴 카루스에 의하면 ‘신교도들 중에서 칼빈주의자들은 종교적 열정에 있어서 로마 카톨릭 종교재판관들과 가장 가깝다. 칼빈의 고향인 제네바에서는 단 세달 동안에 5백여명의 사람들이 이단과 마녀로 처형을 당했다.
1545년 제네바의 교칙을 보면, 고문과 형벌에 드는 인력이 형집행인의 그것을 초과했고, 어떤 고문을 가해도 죄인을 여전히 고백을 거부한다는 불평이 쏟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Paul Carus. op.cit. p.442)고 하였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세 달 동안에 무려 500명의 이단들과 마녀들이 처형되었다고 전해 주고 있다. 이들이 성경을 손에 들고 이와같은 만행을 저질렀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경악할 일이다.
로마 카톨릭에 결코 뒤지지 않는 칼빈주의자들의 이같은 만행이 칼빈주의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은 실로 놀랄만한 일이다.
종교개혁이라는 위장된 옷만 갈아입었을 뿐 카톨릭의 연장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1650년 이후 신교가 급격하게 몰락하고 사람들이 신교를 떠나 카톨릭이나 아니면 무종교 내지 무신론을 급격히 빠져 나간 배경에는 칼빈주의에 의한 만행에 대한 평가와 결코 무관치 않다.
(2) 칼빈이 지배했던 스위스에서의 마녀사냥에 대한 증언
칼빈의 사상적 영향력이 크게 미치고 있던 스위스에서의 마녀사냥 역시 영국 못지 않는 대규모로 이루어 졌다.
칼빈이 지배했던 당시 스위스에서 자행된 마녀 사냥을 보면, ‘16세기 동안, 보(스위스 서부의 주)에서만도(무고하게 잡혀온) 마녀들이 년 40명 비율로 처형되었다.
인구가 고작 7백명에 불과했던 오베르 마르흐탈이라는 마을에서는 단 2년 동안 43명의 여자가 화형을 당했는데’ --(‘The Guiness Books of Historical Blunder' Geffrey Regan : ‘세계사의 대실수’ 세종서적. pp.180)라고 증언하였다.
그 비율을 보면 가히 마을마다 초토화시키는 인간사냥의 만행이 얼마나 참혹하게 이루어졌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보(스위스 서부의 주)라는 주에서만 매년마다 40명 비율로 처형했다는 것은 매일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람 잡는 것이 일이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야말로 당하는 사람이나 가족에게는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악마의 화신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3) 스위스 전역에서 일어났던 마녀사냥의 희생자
‘유럽의 마녀사냥’의 저자 브라이언 레벡(Brian P. Levack)에 의하면 칼빈사상이 지배하였던 스위스에서는 8.800명 이상의 마녀가 재판을 받고 5.000명 이상이 처형되었다.’고(Brian P. Levack. op.cit. p.267)전한다. 실로 엄청난 숫자라는 것을 이내 알 수 있다.
‘영국도 그러하지만 칼빈주의가 지배적이었던 스위스에도 영국에 못지 않는 인간사냥이 폭넓게 자행되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Brian P. Levack. op.cit. p.267)
‘특히 마녀술 혐의로 재판을 받은 이들 가운데 90%가 처형되고 희생자가 2.000명이 넘었다.’(Brian P. Levack. op.cit. p.267)
적어도 신교라고 하면 카톨릭의 잘못된 것을 보고 그것을 개혁코자 하다고 하면 인간사냥에 대한 만행부터 바로 잡아야만 하는데 도리어 카톨릭과 하나도 다르지 않는 인간사냥을 자행했다는 것은 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카톨릭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 불완전한 종교개혁으로써 살상의 종교는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3) 스코틀랜드에서 자행된 청교도들의 인간사냥
(1) 스코틀랜드에서의 칼빈주의의 마녀사냥
제프리 레이건(G. Regan)이 증언하는 바에 의하면, ‘1620년대 무렵, 마녀사냥은 칼빈교파가 지배했던 스코틀랜드에서도 성행해 국경남부 지역보다도 3배나 많은 마녀들이 사형을 당했다.---’(Geffrey Regan pp.180-181참고) 특히 제프리 러셀은(J.B.Russell)은 ‘스코틀랜드에서는 찌르기를 선호하였다’(Jeffrey B.Russell. op.cit. p.162)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찌르기란 마녀의 몸에는 악마의 표식인 무감각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하면 마녀는 몸의 어디엔가는 무감각한 곳이 있어 아무리 찔러도 아무 소리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체로 묶어 놓고 뾰족한 바늘 같은 것으로 몸을 사정없이 찔러대는데 주로 허벅지, 눈꺼풀, 혀 바닥, 유방, 성기까지 사정없이 찔러대는 끔찍한 고문방식이다.
이것은 종교개혁이 아니라 악마적인 행위 그 자체였다. 누가 이와 같은 만행적인 행위를 보고 종교개혁이라고 하겠는가? 서구에서 카톨릭은 그렇다 손치더라도 왜 신교가 무너졌는가를 생각해 보라.
이와 같은 만행이 종교개혁이라고 믿을 사람이 누가 있으며 과연 신교를 카톨릭보다 더 나은 종교라고 할 수 있겠는가?
‘1661-1662년에 스코틀랜드에서 대규모 마녀사냥이 있었는데 이 사건은 스코틀랜드 전역에서 특히 남동부 지역에서 수백 건의 고발 재판, 처벌이 있었다. 이 재판들은 서로 완전히 분리된 개별적인 재판이 아니었는데, 마녀의 혐의자의 몸에서 악마의 표식을 찾은 사람도 같은 사람이었으며, 어떤 경우에는 다른 마을 사람을 동료 마녀로 고발했다.’(Brian P. Levack. op.cit. p.235)고 전하고 있다.
(2) 물에 빠뜨려 심판하는 스코틀랜드에서의 칼빈파의 재판형식
스코틀랜드에서는 심판의 방식으로 다음과 같은 방식이 채택되었다.
‘퓨리턴(청교도들)들은 악마로 지목된 사람 특히 여자들을 모두 벗겨 밧줄로 꽁꽁 묶은 다음 근처의 강이나 연못에 빠뜨려 익사시킨 후 시체가 가라 앉으면 결백하고 떠 오르면 유죄라는 식의 수영 시험을 하여 악마의 마법 재판에 이용하였다.’는(Geffrey Regan pp.180-181) 것이다.
물론 떠올라서 살아 있어면 역시 악마라고 하여 다시 끌고가 이번에는 불에 태워 죽이는 광신적 행위를 저질렀다.
그러므로 한번 마녀로 고발되어 물에 잠기면 살아 날 수가 없었다.
찌르기나 또는 모두 벗겨 밧줄로 꽁꽁 묶은 다음 근처의 강이나 연못에 빠뜨려 익사시키는 방식이나 그것은 종교개혁이 아니라 정신나간 광신이라는데 다른 설명이 필요없다.
이러한 광신적인 살상적 행위들에 대한 칼빈주의 자들의 가장 흔한 변명은 ‘그 시대는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일이 불가피했다’라고 말하는 것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것은 자가당착에 빠진 자기 해석에 불과할 뿐이다.
어떤 것으로 정당화 되거나 합리화 될 수 없는 반그리스도적인 가장 사악한 악마적 소행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이 외치는 교리나 자행한 역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와는 전혀 무관한 교리와 행위일 뿐이다.
(3) 청교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마녀사냥에 대한 증언
칼빈
2005-03-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