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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탈을 쓴 종교 망나니 칼빈과 칼빈 추종자들의 광란사

무차별적인 투옥 추방 처형을 일삼은 칼빈
* 넘치는 제네바 시 감옥과 매일같이 계속되는 칼빈의 인간사냥

(1) 무차별적으로 잡아 들이는 칼빈의 종교국

하찮은 일 가지고도 잡아들이는 칼빈과 그의 종교국은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잡아 들였다. 그 유형들은 다음과 같다.(Ibid. p.80,81. 참고)

1. 어떤 시민이 세례식에 웃음을 지어 보였다.-세례식에 웃은 그 사람을 체포하여 사흘간 감옥에 수감하였다.

2. 어떤 시민이 여름철에 더위에 지쳐 칼빈의 설교하는 시간에 잠들었다. - 그 사람을 잡아다 감방에 수감하였다.

3. 노동자들이 아침 식사에 파이를 먹었다. - 그 노동자들에게 사흥간 물과 빵만 먹을 것을 명령하였다.

4. 두 명의 시민이 구주희 놀이를 하였다. - 두 명 모두 체포하여 감방에 수감하였다.

5. 다른 두 명은 포도주 4/1을 놓고 노름을 하였다. - 두 사람 모두 체포하여 감방에 수감하였다.

6. 어떤 남자가 자기 아들의 이름에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를 거절하였다. - 그를 체포하여 감방에 수감하였다.

7. 눈먼 바이올린 연주자가 춤곡을 연주하였다. - 그 눈먼 연주자를 제네바 도시에서 추방하였다.

8. 어떤 소녀가 스케이트를 타다가 붙잡혔다. - 그 소녀를 종교국에 출두할 것을 명령하고 경고 참회할 것을 명령했다.

9. 어떤 부인이 남편의 무덤에 몸을 던졌다. - 그 부인을 종교국에 출두할 것을 명령하고 경고 참회할 것을 요구하였다.

10. 어떤 시민이 예배 도중에 옆 사람에게 한 줌의 담배를 건네주었다. - 종교국에 출두하여 경고하고 참회할 것을 요구하였다.

11. 동방 축제일에 케이크에 콩을 박았다. - 그 사람에 대하여 24시간 물과 빵만 먹을 것을 명령하였다.

12. 어떤 시민이 ‘칼빈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칼빈씨’라고 불렀다. - 칼빈씨라고 체포하여 감방에 수감하였다.

13. 몇 명의 농부가 예배가 끝난 다음에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 그들을 모두 감방에 수감하였다.

14. 어떤 남자가 카드놀이를 했다. - 카드를 목에 걸고 기둥에 묶어 둘 것을 선고하였다.

15. 어떤 사람이 길거리에서 노래를 불렀다. - 제네바 시에서 추방시켰다.


16. 세 명의 소년이 외설스러운 짓을 했다. - 처음 화형선고를 내렸다. 그러나 은사를 받아 불타는 장작더미 앞에 서 있도록 하여 엄청난 공포에 떨게 하였다.

17. 프랑쇠꽝(Franchequine)이란 부인은 남편 페랑(Ami Perrin)과 결혼식장에서 춤을 추었다. - 감방에 수감, 후에 제네바에서 추방당함.


(2) 무차별적인 투옥 추방 처형을 일삼은 칼빈

역사가들의 증언에 의하면, 칼빈과 그의 종교국은 터무니없는 이유로 제네바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잡아 들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칼빈 그는 독선과 배타성을 가지고 믿음으로 살려던 수많은 형제 자매들을 종교법원에서 이단이란 명목을 붙여서 사소한 일까지 트집 잡아 투옥, 추방, 처형한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조찬선 op. cit. p.94.)는 이 고발에서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심지어 ‘칼빈이 종교적, 정치적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는 믿음에 대하여 약간이라도 의심을 했다가는 물론 가장 잔혹한 형벌을 받았다.(Stefan Zweig. op. cit. p.82.)
칼빈은 자신만이 올바른 성경해석이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천주교의 종교재판(Inquisiti-on)을 보고 자라온 칼빈은 특히 종교적 범죄자를 잔인하게 처벌하였다.’(조찬선 op. cit. p.91.)고 하였다.

아이러니 한 일은 종교개혁은 카톨릭의 만행과 부정과 부정을 바로잡고자 하는 것이어야 했는데 칼빈은 카톨릭과 다름없는 만행적인 행위를 시교의 이름으로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칼빈과 칼빈家는 카톨릭의 혈통을 그대로 이어받은 또 다른 의미의 카톨릭의 작은 집에 불과하였다.


(3) 잡아들인 사람들이 넘쳐나 더 이상 수용이 어려운 제네바 시의 감옥

칼빈은 하찮은 문제들을 가지고 사람들을 죄인들로 만들어 감옥으로 보냈던 것이다.

그래서 제네바 시의 ‘감옥마다 죄수들로 가득 차서 드디어 간수장이 시 당국에 한명의 죄수도 더 받을 수 없다고 통보하기에 이르렀다.’(Stefan Zweig. op. cit. p.80.)고 할 정도였다.

칼빈이 제시한 교회계율이란 칼빈 자신의 생각을 반영한 것으로 비유로 말한다면 마치 바다의 조그만 새치들까지 모조리 잡아들이기 위한 저인망 어선과 같이 올망졸망한 일들을 문제삼아 모두 잡아들이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야말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상기 사례들에서도 볼 수 있지만 공산주의 사회의 감시제도를 능가하는 그런 교회계율이었다. 더 큰 문제는 수많은 사람들이 터무니없는 이유로 잡혀 들어갔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심각한 고문을 당해야만 했다는 것이다.


(4) 너도 나도 고발에 참여하는 제네바 시민들

칼빈과 그의 종교국은 그야말로 우스꽝스러운 것들을 트집 잡아 투옥시켰다. ‘춤췄다고 투옥하고, 설교를 들을 때 웃었다고 투옥하고(조찬선op. cit. p.91.)... 하여간 칼빈의 눈에 벗어나기만 하면, 이유가 어디에 있든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감옥행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몇년이 지나자 모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감시자로 나섰다.

밤이나 낮이나 밀고의 물결이 넘쳐서 종교적 감시라는 물레방아가 끊임없이 돌아갔다. 자신이 하나님의 명예에 위반되는 일을 했다는 혐의를 받지 않기 위해 모든 시민들이 다른 시민을 감시하고 흘겨보았다.

두려움에서 나온 열성이 모든 고발자들을 초초하게 몰아갔다.‘(Stefan Zweig. op. cit. p.75.)
‘제네바 시민들에게 허락된 것은 과연 무엇일까? 별로 없었다. 살고 죽는 일, 일하고 복종하고 교회 가는 일이 허락되었다.’(Ibid. p.77.)는 것이다.

그야말로 제네바 시는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며 고발하며, 또한 고발당하면 모진 고문을 당해야만 하는 웃음과 생명이 사라진 회색빛 도시였다. 이것이 칼빈이 발전시킨 민주사회인가?

제네바 도시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르신 서로가 서로를 믿고 화해하며 평화가 넘치는 도시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고고발하고 죽이는 칼빈의 도시는 그리스도가 원하신 도시와는 거리가 멀었다.


3) 칼빈은 무슨 근거로 사람들을 잡아 들였나

(1) 제네바 시는 칼빈이 곧 법이었다.

제네바 시의 법은 다름 아닌 칼빈이었다. ‘그의 가르침은 곧 법이었다. 그에게 반대하는 눈치만 보여도 곧바로 감옥에 가거나 추방되지 않으면 화형장 장작더미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 무서운 형벌은 정신적 폭군이 모든 논란을 잠재워 버리는 논리의 근거가 되었다.’(Ibid. p.16.)는 것이다. 이러한 칼빈의 논리와 법은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와 아무 관련도 없다.

하지만 제네바 시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이름을 앞세운 칼빈과 그의 가르침은 곧 법이었다. 여기에는 아주 교활한 교리적 조작이 그럴듯하게 도배되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역사나 논리가 규명되지 아니한 상태에서 마치 그것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라도 되는 것처럼 맹신하고 추종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우고, 그리스도와 어떤 관계에 있는데 그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감옥에 보낼 수 있다는 말인가? 그리스도가 칼빈에게 칼빈의 교회규율에 반대하는 자들을 죽이라고 실제로 칼을 쥐어 주었을까? 이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칼빈은 자신이 만든 자기 법에 그리스도나 교회라는 이름으로 포장했을 뿐이다.


(2) 칼빈이 규정한 교회계율의 특징

칼빈이 제네바 시민들에게 어떻게 선서를 강요하였나? ‘초등학생처럼 열명씩 장로(형리의 감독)의 안내를 받아 교회에 가서는 오른손을 들고 장관이 낭독하는 맹세를 같이 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 맹세를 거부하는 사람은 곧바로 도시를 떠나라는 강제명령을 받도록 하였다.’(Ibid. pp.42,43.) 제네바 사람들은 프랑스에서 방금 흘러 들어온 프랑스 망명자에게 칼빈의 21개 조항에 대해 10명씩 갈레 선 포로들처럼 짝을 지어 맹세해야 한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몹시 상했다.

이토록 건방지게 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하고 시민들에게 질문하기 시작하였다.‘(Ibid. p.46.)
더욱, 제네바 시민들을 고단하게 만든 것은 칼빈이 시민들에게 지키도록 제시한 교회계율이라는 것이었다. ‘칼빈의 교회계율이라는 것이 얼마나 하찮은 것들을 규정하고 있는가를 보면 정말 우스꽝스럽다.

그러나 이 방법의 교묘함을 얕보아서는 안된다. 칼빈은 의도적으로 금지의 그물망을 그토록 올망졸망하게 엮은 것이다. 그물 사이로 빠져 나가는 일을 아예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는 일부러 하찮은 일에 대하여 금지령을 내렸다.’(Ibid. p.81.)는
칼빈

2005-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