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프로테스탄트 정신을 지지한 막스 웨버에 대한 사상사적 비판 2
재평가 되어야만 하는 야만스런 칼빈의 프로테스탄트 정신과 막스 웨버
5) 칼빈의 영리추구의 또한가지 이교도적 섭리사상이라는 배경칼빈의 영리추구 교리에 대한 또 한가지 빼놓을 수 없는 엉터리 교리적 배경이 있다.
그것은 칼빈주의의 핵심적인 교리적 배경을 이루고 있는 그리스의 이교도 사상인 스토아주의의 섭리사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칼빈주의 영리추구가 신의 섭리 내지 신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는 해석을 내림으로써 --칼빈주의는 경제적 부의 추구를 적극적으로 긍정한다'('社會思想史, 李壽允, 法文社, 1992, p.208)는 것이 그것이다. 대개 이렇게 말하면 섭리라는 사상이 성경에 있는 것이 아니냐 하고 반문하지만 여기에 대한 냉정한 역사 평가를 다시 해야만 한다.
지면상 이에 대한 많은 자료를 공개하기는 어렵고 섭리사상에 대한 역사적 기원에 대한 증언을 소개하면 연세대학교 김균진 교수의 증언을 소개하고자 한다.
'기독교는 이 섭리개념을(기독교 밖으로부터) 받아 들였다. 그리고 기독교 섭리사상은 이 개념의 의미를 기독교적으로 수정하였다'(基督敎組織神學, 金均鎭, 연세대학교출판부. 1987.12.10. 5판. p.346)라고 하였다.
여기서 섭리사상이라는 것이 성경이 아니라 기독교 바깥이라는 이교도들에서 들어온 사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여기서 말하는 기독교 바깥이란 다름 아닌 그리스의 스토아 사상이며 신플라톤주의로 종합되는 고대 그리스의 전통적 사상을 지칭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보다 많은 역사적 배경에 대한 분석과 접근이 필요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그리스의 스토아의 섭리 교리는 이러한 그리스인들의 힘의 추구를 바탕으로 한 경제적 부를 신의 축복으로 하는 신앙관의 종합으로 칼빈주의라는 탈을 쓰고 나와 근대사라는 역사적 수면 위에서 꽃을 피우게 되는 것이다.
막스 웨버가 지지한 칼빈의 두 가지 사상적 이유들을 담아 내고 있는 포괄적인 섭리 세계관은 그리스의 토속적인 이교 사상을 연원으로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스토아 금욕주의와 아폴로 신화적 종교관이 함께 어우러진 희랍을 대표하는 결정체인 섭리체계가 함께 어우러져 칼빈의 경제 사상적 원리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해야만 한다.
6) 칼빈주의자들의 이익추구를 위한 이중성과 종교적 특징
칼빈은 자신은 외면적으로는 카톨릭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저항하고 공격하지만, 그 이면에 내면적으로는 카톨릭의 사고를 결정하는 사상과 교리를 원형 그대로 수용하였다.
또한 칼빈의 경제개념 및 윤리 또한 중세 카톨릭이 추구하던 봉건주의적 경제 개념을 배척하면서도 중세 카톨릭이 주장하던 경제윤리의 근간인 섭리예정 사상의 교리를 철저하게 수용하고 그것을 이용한다.
칼빈의 교리와 사상, 세계관은 철저하게 카톨릭의 교리이며 경제 윤리의 기반을 제공하는 동일한 교리이다.
문제는 중세 카톨릭은 이 교리에서 대토지 소유를 인정하는 봉건주의를 신봉하는 경제 이데올로기를 해석하고 중세 사회를 지배한 반면, 칼빈은 카톨릭과 동일한 교리에서 금욕주의와 부의 축척이 하나님의 축복이라며 '영리추구가 신의 섭리 내지 신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는 해석'을 이끌어 낸 것이다.
그리고 '경제적 부의 추구야말로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교리를 이끌어 낸 것이다. 분명 자본주의는 중세 봉건제도의 경제제도를 거부하고 나온 것인데 어떻게 동일한 교리에서 상반된 두 경제사상이라는 패러다임들이 가능했으며 칼빈은 상공업적 프로테스탄티즘을 창출해 낼 수 있었는가?
앞서 말했지만, 스토아적 금욕주의나 아폴로적 종교개념이나 이를 모두 담아내는 섭리교리는 모두 그리스인들의 사상적 유물들이다.
그런데 이들의 교리적 특징은 이리 구부리면 이리 구부러지고, 저리로 구부러지고,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된다는 사실이다. 그리스인들의 이 교리적 사고의 특징은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는 대로 해석해 댈 수 있다는 것이다.
봉건주의식으로 하려면 얼마든지 봉건주의를 정당화 하는 논리가 가능하고, 자본주의식으로 해석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칼빈은 기독교와 무관하게 급속히 진행되는 자본주의를 대면하며 자신이 수용한 섭리교리에 의거한 그리스적 섭리방식으로 '영리추구가 신의 섭리'라고 해석한 것이다.
따라서 '아폴로(Apollo)'의 원리는 신흥상공업자들의 합리적 정신과 왕성한 물질적 부에 대한 욕구의욕을 반영한다'는 경제적 부와 관련된 고대 이교도 희랍인들의 부를 신봉하는 관념이 칼빈의 경제윤리 사상에 강력하게 묻어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칼빈의 경제이데올로기 즉 부의 축적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보는 프로테스탄트 윤리는 근원적으로 카톨릭의 경제 이데올로기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카톨릭과 칼빈의 교리적 세계관이 동일하듯이 경제 이데올로기 또한 그 원형에서 출발점이 결코 다르지 않다.
7) 막스 웨버가 주장한 칼빈의 프로테스탄트사상은 성경의 논리가 아니다
역사사상가들이 칼빈주의의 신앙관과 이익추구에 대한 성격에 대하여 결론내리기를 'Calvin주의적 신앙은 이기주의 이론이다. 그것은 이기주의의 논리이다'(D. MacLellan, 'The Young Hegelian', Karl Marx, 홍윤기 역, 학민사 1984, p.216)고 지적한다.
이러한 이기적이고 희랍적인 사상체계가 소위 기독교의 정통이라고 자처하게 됨으로 수많은 오해와 엉터리 신앙관을 유발시켜 씻을 수 없는 만행을 자행하게 되는 것이다.
가령 미국의 청교도들이 검소와 금욕을 외치면서도 그들은 인디언들의 땅과 재산과 목숨을 마음대로 유린하며 그들의 것을 자신들 요구대로 탈취하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며 하나님의 섭리라고 이기적인 자기해석을 해 댄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칼빈의 프로테스탄트의 이중적인 성격에서 발생된 것이다.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네 오른 편 빰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갖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五里)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十里)를 동행하며 --'(마태복음5:39-41)라고 하신 예수님의 희생 정신의 의미를 바로 구별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희생을 근간으로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정신과 가르침이 어떻게 칼빈주의자들의 사람을 죽이고 팔아먹는 상업적, 살상적 논리 즉, '1637년(칼빈주의) 청교도들이 대담하게도 민병대를 조직하여 원주민 촌을 습격하여 500명의 사람들을 죽이고 살아남은 부녀자들과 아이들을 노예로 잡아 서인도에 팔아 버렸다'는 ('기독교죄악사', 조찬선(하권), 2000.8. p.160)행위와 '청교도들은 인디언들을 쫓아내고 땅을 배앗은 것을 강제적인 몰수나 침략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으로 해석하였다'는(앞의 책, 조찬선. p.201) 파렴치한 논리와 같을 수 있다는 말인가?
하나님의 섭리와 영광을 앞세워 사람들을 마구 죽이고 그들의 땅과 재산과 목숨을 빼앗고 고귀한 사람들을 노예로 팔아먹고 그 돈을 받아들고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하는 사상은 하나님을 도용한 도적과 살인마들의 사상에 지나지 않는다.
칼빈의 프로테스탄트 사상은 확실히 이기적인 논리이며 '현세의 이익을 구하도록 재촉하며 이윤(利潤)추구를 정당화시키며 부의 축적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논리'는 이교도 그리스의 종교논리이지 결코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논리와는 거리가 멀다.
이에 대한 보다 광범위한 역사적, 교리적, 정치 경제사적, 철학사적 분석이 다각도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특히 칼빈이 이교도 사상들을 기원으로 하는 이교도들 논리를 위장하여 이러한 이기적이고 엉터리 논리가 '사도 바울과 복음서에서 유래된다'는 ([Calvin and The Reformation] William Park Armstrong, 기독교문화사 역 1986, p.48) 교활한 주장은 근거가 없는 허망한 주장이다.
8) 재평가 되어야만 하는 야만스런 칼빈의 프로테스탄트 정신과 막스 웨버
막스 웨버와 같은 대학의 교수이며, 웨버가 칼빈을 지지하는데 대하여 반대의견을 제시했던 트뢸체(Troleltsch)는 '프로테스탄티즘이 중세기 문화의 연장이라는 것으로써 기독교는 중세의 일부분이며, 근대세계를 열거나 시작하게 한 것도 아니며 근대사회의 일부도 아니다'라고 ([Calvin and The Reformation] William Park Armstrong, 기독교문화사 역 1986, p.43)하였다.
트뢸체는 칼빈 뿐만 아니라 프로테스탄트야말로 루터든 칼빈이든 자본주의의 출범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지적하였다. 이것은 정확한 지적이다.
중세 카톨릭이 주도하던 봉건주의를 무너뜨리고 근대 자본주의를 탄생시킨 것은 역사적 사상, 사회운동, 학문적 세계관 모든 면에서 자본주의의 출범과는 무관하다. 물론 카톨릭은 더더욱 아니다.
칼빈의 프로테스탄트 윤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가르침도 아니고, 바울의 교훈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그리고 현대 자본주의는 칼빈에 의해 출범된 경제제도도 아니고 그로 말미암아 주도해서 발전된 것도 아
칼빈
2005-0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