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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영국,스코틀랜드들에 의한 마녀사냥

영국의 청교도 인간사냥꾼 존스 홉킨스
* 영국에서 자행된 청교도들의 인간사냥

(1) 영국 청교도들에 의한 3만 명의 마녀사냥 인간사냥

영국에서 칼빈파 청교도들이 자행한 16, 17세기의 대규모 마녀사냥이 대개 칼빈 파에 의해 자행된 만행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16세기와 17세기에 영국에서만 3만 명이 살해되었다'(Richard Shenkman, op. cit. p.71)는 사실은 과장된 것도 날조된 허위 사실도 아니다.

청교도들에 의한 영국에서의 3만 명 살해!
이것은 칼빈주의자들에 의해 얼마나 광범위하고 잔악한 살상이 영국 전역에 걸쳐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졌는가를 잘 말해 주는 것이다.

과연 이토록 잔인하고도 무자비하게 사람을 마구 죽이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가?

'16세기와 17세기에 영국에서만 3만 명이 살해되었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미국으로 가고 싶어 안달했는지 이제 알겠는가? 물론 미국에서도 마녀를 죽였다'(Richard Shenkman, op. cit. p.71)고 한다.

과연 이와 같은 만행과 살상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의 세계관에서 가능한 일이라고 믿고 있는가? 엄격히 말해서 성경과 전혀 무관한 허구라는 칼빈주의 사상인 나쁜 나무에서 그 열매가 달린 것이다.

어이없게도 이 나쁜 나무를 성경의 정통으로 알고 여전히 교회가 그것을 신봉하며 그들의 교리가 정통교리라고 따르고 있는 것이다. 거짓 선지자가 양의 옷을 입고 죽이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해야 한다.


(2) 제임스 왕의 마녀사냥에 대한 지지와 예정설

영국의 제임스(James) 왕은 마녀사냥을 지지한 왕으로도 유명하다. '제임스는 열렬한 칼빈파 신자였기 때문에 마녀의 존재를 주장하는 그의 주요한 논거는 예정설이었다.'(Jeffrery B.Russell, op. cit. p.170)

인간은 신의 형상대로 만들어 졌지만 원죄로 인해 그것을 상실해 버렸다. 신의 은혜를 베풀어 선택된 자들을 그 형상으로 복귀시켰지만 나머지 인류는 모두 '신(하나님)의 적인 악마의 손에 내 맡겨졌고, 악마의 형상이 되어 최대의 불경'을 기뻐하게 되었다.

최대의 불경이란 신의 가장 큰 적인 악마에게 예배하는 것이다.

선택되지 못한 자들은 악마의 추종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악마의 의례를 행하고 자신들의 신인 어둠의 중게 공공연하게 충성하는 것은 당연하다.

'왕은 이와같은 그리스도의 적들을 찾아내라고 기독교 신하들에게 명령했다'는 것이다.

제임스가 영국의 제임스 1세로 등극하면서 '새나라의 대륙의 관념'을 서둘러 도입하였다. 그가 흠정한 개정판(성서 : 일명 King James)는 지금까지의 영어성경보다 마녀라는 말을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다.

또 마술을 금지한 1604년의 새로운 법률은 계약, 악마숭배와 같은 대륙의 관념을 영국의 법률용어로 정착시켰다. 날조라는 사실이 명백한, 이른바 마술 사건을 몇 건 정도로 조사한 뒤로 제임스는 의견을 수정했다. 그러나 영국의 법률과 한 번 태어난 마술 신앙은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았다.'(Jeffrery B.Russell, op. cit. p.171-172)


(3) 영국과 스코틀랜드의 청교도 인간사냥꾼들

① 영국의 청교도 인간사냥꾼 존스 홉킨스

칼빈주의자들이 있는 곳에는 대개 이단 사냥군이나 마녀 사냥군들이 존재한다. 영국에서는 존스 홉킨스와 스천이 그러했다. 청교도들에 의해 주도된 영국에서 마녀 사냥의 광기는 1640년대에 정점에 달했다.

이 때 마녀사냥은 청교도 매튜 홉킨스(Mattias Hopkins)가 애식스 주에서 행한 것이 인간사냥의 그 잔인함에 있어 극에 달했다.

제프리 러셀이 전하는 바를 그대로 옮기면 홉킨스는 본격적으로 마녀사냥을 시작하기 전까지 그의 인생은 잘 풀리지 않았다. 이러한 인생을 거듭하던 홉킨스의 인생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준 것은 다름 아닌 마녀사냥이었다.

그가 '2년 동안 교수형에 처한 사람의 수는 16세기를 통틀어 처형당한 사람들보다 더 많았다'(Jeffrery B.Russell, op. cit. p.173)는 것만 보아도 그의 잔인함과 포악함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청교도 홉킨스는 애식스 주 청교도들의 전쟁에 대한 불안감을 이용해 그들 사이에 많은 마녀들이 몰래 활동하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시대의 격차가 있기 때문에 그의 동기를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지나온 삶이 실패의 연속이었던 그로서는 방법이야 어찌되었던 명성과 성공을 거머쥘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을 환영했을 것이다.

그 결과 그는 권력을 향유했을 것이며, 노력에 대한 금전적인 대가도 거두었을 것이다.

줄곧 제임스 왕의 '악마의 연구'에 의거해 엄부를 수행해 나간 것을 보면, 어쩌면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옳다는 확신조차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홉킨스의 동기가 무엇이건 간에 그의 활동은 세인들의 환영을 받았다.

1566년이래 마녀 고발의 표적이었던 첼름스퍼드에서 1622-1645년 사이에 이름을 날린 그는 영국의 남동 비장 전역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일에 협력할 마녀 수색자를 임명하기도 하였다.

홉킨스의 방법은 철저했으며 관용이라고는 조금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는 일년만에 한 주에서만 60명이나 되는 자들의 목을 매달았으며, 혹자는 오직 익사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혹자는 밤낮으로 종일 땅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다는 이유로, 그리고 고통을 느낀다는 이유로 모두 마녀라는 죄명을 씌워 교수형에 처했다. 또 갑작스런 사고로 죽어버린 초록 거위들이나 칠면조 새끼들, 혹은 돼지들에게 못된 장난 짓을 걸었다고 사람들을 죽였다.

이처럼 그는 멋대로 추측해 댔다.(Paul Carus, op. cit. p.419)

피의자를 벌거벗겨 마녀의 표식 찾아내기, 식사를 주지 않기, 재우지 않기, 수영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피의자를 시험하고 고문했다.

그렇게 해서 끌어낸 자백의 내용은 그가 대륙의 전통을 수용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홉킨스는 영국의 전통도 무시하지 않아서 그가 찾아낸 마녀들은 개, 고양이, 쥐, 두더지, 다람쥐 등의 모습에 이름이 프릭이어즈(Prick-ears) 플로(Flo) 베스(Bess) 따위인 부리는 잡귀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홉킨스와 그의 조수들은 그러한 작은 도깨비 무리를 실제로 보았다고 법정에서 보았다고 증언하고 있다.

마녀는 다종다양한 말레키피아를 저질렀다는 혐의를 받았다.

존 로스라는 초보의 브란테스턴 목사는 임스위치를 출항한 배를 주술로써 침몰시켰다는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로셀호프 로빈스는 평가하기를 재판관들은 홉킨스의 설득력에 사로잡혀 '그날 침몰한 배가 있었는지 여부를 조사하는 수고조차 기울이지 않았다고 이 재판을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홉킨스는 지나치게 앞서 갔으며 지나치게 몰아 붙였다. 그 결과, 1646년에는 그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상당히 높아져 있었다.

결국 그 해가 끝나갈 무렵이 되자 그는 자리에서 물러나야만 할 처지에 놓였고, 이듬해에는 상당히 불명예스러운 생에 종지부를 찍는다.

고작 2년 동안에 그는 영국의 마녀수색대장이라는 비공식적인 명칭까지 얻을 정도였으니 그 잔악상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Jeffrery B.Russell, op. cit. p.173, 174)


② 스코틀랜드의 마녀사냥꾼 존 키나드와 존 딕

청교도가 지배했던 스코틀랜드 역시 예외없이 인간사냥꾼들이 존재했다.

스코틀랜드에서 대규모 마녀사냥이 이루어졌으며 절정에 이른 때가 1661-1662년 사이였다.

이러한 대규모 인간사냥의 배후에는 어김없이 인간사냥꾼들의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대표적인 사람으로 존 키나드(John Kinard)와 존 딕(John Dick)이라는 두 명의 인간 사냥꾼, 마녀 사냥꾼이 있었다.

존 키나드와 존 딕의 스코틀랜드의 인간사냥꾼들의 특징은 여자의 몸에서 악마의 표식을 찾기 위해 온 몸을 벗겨 놓고 뾰족한 것으로 여자들의 민감한 신체 부분들을 사정없이 찔러대는 것이었다.

마녀들을 잔악하게 심판한 것으로 유명하다.


(4) 영국에서의 마녀 사냥의 특징과 이유

'마녀의 역사'라는 저서의 저자 제프리(Jeffrery B.Russell)의 증언에 의하면 '기독교 신학이 그들을 마귀로 돌변시킨 이래 그들에게 악한 속성이 생겨난 것이었다. 그들은 마녀와 성교하고 마녀의 유두를 통해 주인의 피를 빨아먹었다.

마녀의 유두라는 여분의 돌기물을 찾아내는 것은 영국의 마녀 재판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 중에 하나였다.'(Jeffrery B.Russell, op. cit. p.162)고 증언하고 있다.

마녀 색출은 '집단적 처형은 대부분 연쇄적인 사냥의 결과였으며 맨 먼저 재판을 받은 마녀가 동료 마녀의 이름을 대면, 그 동료들이 재판에 회부되어 유죄 판결을 받고, 이들은 다시 다른 동료의 이름을 대도록 강요받았다.'(Brian P. Levack, op. cit. p.235)

마녀 사냥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칼빈

2005-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