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왜곡된 신앙관과 왜곡된 인간 해석
칼빈주의가 존재하는 한 계속적인 이단아닌 이단이 속출되기 마련
1)성경을 자기 원리로 삼아 이용하여 만행을 일삼은 칼빈(1) 성경을 이용해 자기 원리로 둔갑시킨 칼빈의 ‘경건생활’에 대한 주장
칼빈이 주장하는 경건의 실상이 무엇이었는가를 알아 볼 필요가 있다. 그가 제네바 시민들에게 요구했던 경건이란 어떤 것이 과연 경건이었는가 킬빈의 말을 들어보자.
‘칼빈의 생각에 따르면 아내 친구 형제와 친족이 단 한 점이라도 종교국(수많은 사람들을 고문하고 죽인)의 올바른 신앙과 다른 의견을 가질 경우에는 즉시 그들을 종교재판에 넘기는 사람만이 경건한 사람이다.’(Ibid. p.176) 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칼빈이 요구한 대로 칼빈을 반대하거나 비방하는 사람들을 신고하면 그것이 경건이라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 같이 행동하였고 그의 가르침이 곧 경건의 대상이었다는 것이다.
얼마나 철저하게 성경을 이용하여 성경을 자기 것으로 사용하는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가?
성경에서 예수께서 진리가 그 속에 없는 자들은 ‘ 진리를 말할 때 마다 자기 것으로 말한다.’고 하셨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칼빈이다.
어떻게 자기 안내, 자기 식구, 부모, 이웃, 친구, 친족을 고발하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경건의 신앙이라는 말인가?
자신을 위한 일을 감히 하나님에 대한 경건으로 간주하는 이기만적인 경건! 거짓을 말하는 위선자들의 전형적인 유형이기도 한 것이다.
결국 칼빈의 이러한 경건, 이러한 신앙으로 칼빈과 다음 장에서 나오는 칼빈주의자들의 무자비하고 잔악한 행위들이 봇물 터지듯이 저질러졌어도 그 거짓된 비밀을 알지 못해 그것이 성경인 것처럼 지금도 정통처럼 활보하고 있는 것이다.
(2) 하나님의 명예를 자신의 목적하에 종속시켜 상대방을 공격한 칼빈
칼빈의 편협성에 대하여 ‘누군가가 칼빈에게 극히 학술적으로 반대를 하는 경우에도, 그가 하나님의 종을 모독함으로써 하나님의 명예를 모독하였다고 했다.
누군가가 성 피에르 교회의 설교자인 칼빈을 개인적으로 지배욕이 강한 사람이라고 부르기만 해도 ’하나님의 교회를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칼빈의 판단은 자기가 곧 하나님의 교회내지 동등한 것으로 간주하는 사고에서 나온 것이다.
물론 칼빈은 가장 겸손한 인간인 것처럼 위장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놓고 하나님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을 간파할 수있다. 킬빈교리의 겸손에 대한 허구와 오만의 비밀이 여기에 숨겨져 있다.
(3) 잔악한 자신의 행위들을 하나님이 부여한 의무라고 간주한 칼빈
칼빈은 ‘모든 죄인에 대해 냉혹하고 동정심이 없는 것을 칼빈은 자신의 체계에서 가장 상위의 규칙으로 여겼다. 그리고 이 체계를 쉼없이 실행하는 것이 하나님이 자신에게 부여한 의무라고 확신했다.’(Ibid. p.49) 고 간주했다.
칼빈은 자신의 계율이 자신에게 부여한 하나님의 의무라고 여겼다는 것인데 이 역시 자기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예정하였고, 자신에게 죄인들을 다스릴 수 있는 의무와 절대 주권에 의한 예정을 한 것으로 간주하고 잇으나 이는 근거없는 자기 논리에 불과할 분이다.
이것이 자기를 최상으로 삼고자 하는 유혹적인 예정론의 놀 리가 제공하는 것이지만 본질을 벗겨보면 도리어 사악한 죽음의 논리에 불과한다.
곧 죽이는 교리이며 죽이는 영이다. 성경은 이렇게 경고하고 있다.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하는 이리라.’’(「마태복음」7:17) 그리고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요한복음」10:10) 라고 하였다.
칼빈과 칼빈주의자들이 이와 같이 노략질하는 이리처럼 거침없이 사람들을 죽이는 본성적인 본질이 어떻게 해서 가능하냐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인격적 신앙의 명예와 직결되어져 있기에 그 원인은 반드시 규명되지 않으면 안된다.
(4) 자신의 만행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기만한 칼빈
‘그(칼빈)는 단 한 명의 죄인이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나는 것보다는 차라리 죄없는 많은 사람이 벌 받는 쪽을 택하겠다고 고백하였다.
언젠가 수 많은 처형중에서 한 번은 형리가 미숙했던 탓으로 원했던 고통에 도달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자 칼빈은 파렐(칼빈의 최측근)에게 이렇게 사과하였다.
’선고받은 죄인들이 그렇게 오래도록 고통당한 것은‘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없이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Stefan Zweig. op. cit. p.79) 여기에는 간과할 수 없는 세 가지 깊은 뜻이 담겨져 잇다.
첫째는 자신의 교리에 벗어나면 단 한명이라도 용서할 수 없는 죄인으로 취급하였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그렇게 해서 형벌을 받는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의 뜻이라는 아전이수적인 해석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터무니없는 예정설이 절대적인 기준이며 자신이 기준이 된다고 간주하였다는 사실이다.
세 번째는 칼빈은 참혹하게 고문하는 현장에서 그러한 끔직스런 고문을 말리기보다는 더욱 독려했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칼빈의 예정설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는 칼빈의 예정설의 허구에 대하여 그 실상을 분명하게 가려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지금 본 서에서 칼빈이 저지르는 끔찍하고도 무자비한 망상적인 행위들을 보고 있는데 이모든 것이 사실은 칼빈의 허구적인 교활한 사상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칼빈과 그의 종교국이 행하는 행위 하나 하나가 칼빈의 교리와 사상에 직결되어져 있는데 사람들을 화형에 불질러 죽이고, 목을 잘라 죽이고 수많은 고문이 가능하도록 하는 근거가 망상의 칼빈의 예정론 사상이라는 것을 아지 않으면 안된다.
(5) 언제나 자기에게 가장 유리하게 알도록 성경을 이용하는 칼빈과 이단 정죄
칼빈의 교육복사 카스텔리오는 칼빈의 성향에 대하여 증언하기를 ‘언제나 자기에게 가장 유리하게 알맞은 부분을 인용하는 칼빈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제거하는 것은 성서의 권위를 통해서 성스러운 의무로 주어졌다고 설명한다. (Ibid. p.175) 고 말하였다.
칼빈이 주장하는 예정론의 특징은 언제나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을 발췌해서 쓰는 것이 특징이다.
문제는 이 마각의 교리가 성경의 모든 것을 다 쓸어 담은 것처럼 광대해 보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능가하는 기독교 내에 올바른 설득력 구조가 없다보니 칼빈의 놀리에 제압당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니 칼빈이 자기에게 유리한 부분들만 발췌해서 그것이 성경의 정통이라고 주장한다고 한들 아무도 거기에 비견할 수 없는 것이 기독교가 안고 있는 한계이다.
그리고 더욱 심각한 것은 그들과 논쟁에서 이길 수 없으니 그들의 세력에 의해 이단으로 낙인되는 순간에 과거에는 사형으로, 현대에는 수적 기득권과 교권이라는 세력을 앞세워 철저하게 상대방을 고립시키고 매장시키는 '이단왕따‘로 수장시키는 것이다.
그들이 이렇게 이용하는 것은 성경을 이용하는 규모가 거대해서 도대체 그것이 어떤 허구인가에 대한 규모 자체를 분간할 수없을 뿐만 아니라 그 치명적인 허구가 어디에 있는지 조차 알지 못함으로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기독교를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그들은 거대한 구조로 성경을 수단으로 이용한고 있다는 것이다.
그 수단화된 성경들을 빌미로 정통성을 쟁취하고 마음대로 칼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의 비극은 이 거대한 악순환의 그물에서 벗어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2)왜곡된 인간해석과 그로 말미암은 칼빈의 살상적 행위들
칼빈이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은 극단적으로 편협한 시각일 수 밖에 없다.
아직까지 그 정체가 모두 들어나지 아니한 그의 교리의 허구적인 논리에 의거한 그의 편협한 사고는 인간에 대한 전체적인 시각을 왜곡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야말로 독선적 시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1) 인간은 끊임없이 주님의 공포 속에 살아야 하는 존재로 보는 칼빈
인간은 주님의 공포속에 살아야 하는 존재로 보고 있는 칼빈이다.
‘칼빈의 생각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절대로 두 눈을 뜨는 밝은 양심으로 이 세상을 돌아 다닐 권리가 없다.
인간은 끊임없이 주님의 공포속에 머물러 있어야 하고 겸손하게 몸을 굽히고 자신을 구원할 길 없이 부족하다는 감정속에서 부서져야 할 존재인 것이다.
칼빈은 인간이 하는 전반의 모든 일은 고발해야 하는것이고 감옥에 잡아 넣어야하고, 죽어야만 하는 거이었다.
주님은 공포의 대상이 되었고, 사람들은 주님의 공포에 항상 두려워하며 다른 사람들을 감시하고 고발해야 하는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칼빈이 외치는 주님이
칼빈
2005-0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