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마냥 사냥의 배경과 실예
칼빈니스트칼빈 성직자의 마녀 색출과 재판
* 칼빈주의 마녀사냥에 대한 방법과 배경과 평가1) 마녀사냥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나
(1) 마을과 마을을 돌면서 무작위로 마녀 색출과 재판을 하였다.
영국의 마녀사냥의 특징은 마녀사냥꾼들이 마을과 마을을 계속해서 돌아 다니면서 마녀들을 색출하고 심판했다는 것이다.
' 매튜 홉킨스와 존 스턴이 애식스와 서포크의 여러 도시와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사냥을 하였는데 마을과 마을을 이동하면서 마녀술 재판을 계속하였다.'(Brian P. Levak.op.cit.p.237)
지나가는 여인이 수상하다 싶어 신고하면 마녀가 되는 경우도 있었고, 자기가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복수심에 신고해도 마녀로 몰려 처형되는 경우도 있었다.
'셀수 없이 많은 민간인들과 가난한 사람들은 대체로 무작위적으로 그런가 하면 부자들은 신중하게, 어떤 식으로든 매우 치욕스러운 미신의 희생양으로 전락하였다.'
(Paul carus.op.cit.p.344) 무고하고도 무차별적인 인간사냥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2) 성직자들이 밀정이 되어 마녀를 찾아 다녔다.
'16,17세기에 교회에서 벌린 마녀사냥은 잔혹한 고문과 탄압 그 자체였다.
교회의 승려들 다시말해 성직자라는 밀정들은 마녀를 찾아내기 위해 이 마을 저 마을로 돌아다녔다.
그들은 어떤 여자든 마녀라고 의심이 되면 어떠한 몸짓이건 그녀가 마녀와 어울리고 있다든가, 이전에 어울린 적이 있었다든가 하는 증거로 삼을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어떤 여자든지 마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세계사-송원옥. 큰 산. pp.47-49) 교회의 승려들, 즉 성직자들이 밀정이 되어 마녀를 찾아내기 위하여 혈안이 되어져 있었던 것이다.
성경은 이를 두고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라고(베드로전서 5:8) 하였는데 성직자가 아니라 그야말로 죽일 사람들을 찾아 다니는 죽이는 영들이었다.
그 죽이는 영이 어디서 나왔을까? 그들의 교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므로 어던 여자든지 마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는 것은 어던 여자든지 마음만 먹으면 죽일 수 있었다는 말이다.
칼빈은 외치기를 ' 인간은 끊임없이 주님의 공포속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고(Stefan Zweig.op.cit.68) 하였는데, 그야말로 온 세상이 사람 죽이는 칼빈 사상으로 인한 공포가 온 천지를 뒤엎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3) 마녀로 고발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이름을 대면 그 사람도 마녀가 되었다.
마녀사냥이 황당했던 것은 마녀로 고발을 당한 사람을 붙잡아 들여 고문하면서 다른 사람의 이름을 대면 그 이름의 당사자들도 마녀가 되어 처벌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한 사람이 수명, 수십명, 수백명의 이름을 대면 그것으로 마녀가 되고 처형되었다. 그러므로 애꿎은 사람이 마녀가 되어 불에 타 죽거나 물에 빠뜨려 죽거나 목잘라 죽어야 하는 불쌍하고 불행한 여인들이 속출하였다.
1661-1662년 스코틀랜드에서 일어난 대규모 마녀사냥, 1645-1646년 잉글랜드에서 일어난 대규모 마녀사냥, 미국의 세일럼에서 일어난 소녀들에 의한 대규모 마녀사냥은 다른 사람의 이름을 대면 고발된 사람들은 졸지에 마녀가 되어 마녀로 처벌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들은 구교나 신교를 막론하고 적용되었는데 '트리에르에서는 306명의 마녀가 1500명의 동료 마녀의 이름을 댔으며,---루앙에서는 단 9명의 고발자가 525명을 고발하기도 하였다.'(Brian P. Levak.op.cit.p.236) 물론 이렇게 고발된 마녀들은 한번에 처형하지는 않았을지라도 반드시 죽임을 당하였다.
(4)나체에 불을 붙여 견디지 못하면 마녀로 처형하였다.
마녀로 잡혀 온 여자들을 조사하는 과정이나 고문하는 과정 또한 잔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실상의 한 예들은 다음과 같다.
'밀정마녀로 지목된 사람들은 보통 여인이었다.
일단 마녀로 의심받게 되면 이단 심문관은 그녀를 붙잡아다가 비약을 감추고 있는지 조사하기 위해 나체로 만들고 체모나 항문 음부까지도 철저히 조사하였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몸에 숨겨놓은 비약이라는 것을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모발에서부터 겨드랑이털, 치모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깎아 내렸다.
거기서 아주 미세한 이물질적인 다시말해 농촌이니까 지푸라기나 깃털같은 것이 나오면 그것이 비약이라며 마녀로 간주해 보린다.
만약 그런 것들이 발견되지 않으면 나체로 고문대에 쇠줄로 묶어 놓고 바늘같은 것으로 몸을 사정없이 찌른다.
그것도 유방이나 허벅지 외에 눈꺼풀이나 혓바닥, 성기까지 찔러댔다. 고통을 느끼지 않으면 마녀는 아니라고 했으나 대개 찡그리기 마련인데 얼굴을 찡그리면 마녀라고 판정을 내린다. 그래도 고백을 하지 않으면 물고문을 가했는데 9리터 정도의 물을 마시게 하였다.
그것도 견디어 내면 이번에는 발바닥이나 겨드랑이 밑, 성기에까지 기름이나 유황을 발라 불을 붙였다.
견디지 못한 여자들이 자백하면 마녀로 판정하여 화형을 시켰다. 나체 위에 유황을 바르고 불을 붙이는 것은 악마의 오염을 정화시키고 그 힘을 완전히 소멸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구실로 화형을 시키는 것이었다.'(송원옥.op.cit.pp.47-49)
(5) 불태워 죽임으로 영혼이 구제된다는 미명하에 살상하다.
칼빈과 제인스 왕의 경우에서 여실히 볼 수 있듯이, 자기가 원하는대로 마음대로 해석이 가능하고, 아전인수적인 자기 해석과 자기 정당화가 가능한 칼빈의 예정교리만큼 마녀사냥 인간사냥의 결정적인 근거가 되는 도구내지 지원자는 없다.
그것에 의해 정당회된 청교도들에 만행에 대한 역사학자 네루는 다음과 같이 고발하였다.
' 그들은 쉼사이 없이 이단사냥하여 몇 백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형틀에 매달아서 태워 죽였다. 이 보다 더 심했던 것은 전향을 강요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가해진 고문이었다.
수많은 불쌍하고 불행한 여인들이 마녀로 고발되어 화형을 당하기도 했다.특히 영국이나 스코틀랜드(청교도들을 지칭)에서는 종교재판의 명령에 위해서가 아니라 폭도들에 의하여 행해진 일도 있었다.
그들은 인간을 형틀에 걸어 놓고 불태워 죽임으로써 그의 영혼 또는 타인의 영혼까지도 구제된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종교인은 가끔 강제로 억누르고 자신의 의견에 억지로 다른 것을 강요하는 것이 공익을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수가 있다. 신의 이름을 빌어서 그들은 살상을 하고 살인을 자행하였다. 그들은 불명의 영혼을 구제한다고 말하며 화형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종교가 거쳐온 길은 대단히 부정적이었으며 그 중에서도 종교재판의 잔혹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하여튼 그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하는 사람들이 그것은 개인적인 영달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의로운 일을 하고 있다고 굳게 믿으며 행동했다는 것은 실로 놀랄만한 일이다.(Jawaharlal Nehru, op.cit.p.45)
2) 마녀사냥의 배경
(1) 신교의 마녀사냥은 카톨릭과 같은 지배도구로서의 세습적 재산이었다.
신교도 국가에서 마녀사냥이 계속된 것은 지배도구의 수단으로 세습된 것이다. 폴 카루스는 신교의 마녀처형에 대한 성격을 카톨릭의 유산으로 규정하였다.
'중세기의 사실상의 마술의 종교였다는 것을 고려할 때, 마녀처형은 교황권의 지배권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결과였던 것이며, 마술에 대한 믿음이 지속되는 동안은 신교도 국가에도 암흑기의 세습재산으로 지속되었던 것이다. (Paul Carus.op.cit.p.317) 그러므로 신교 특히 칼빈의 수많은 살상 가운데도 그러한 성격은 충분하게 내포되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칼빈이 멸한 대상은 불신자들이 아니었다. 이단도 아니었다.
또 교회를 거역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가 멸한 대상은 칼빈의 교리와 일치하지 않는 자들이었다. 칼빈은 자기의 교리와 자기의 성경해석의 권위와 자기 권위에 도전하는 자들을 처형하였다.'(조찬선 op.cit.p.110)
예외없이 이 교리적 근간에서 상대방은 제거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2) 마녀사냥은 개인의 목적으로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다.
대개, 카톨릭이나 선교의 악마사냥은 대개 자신과 다른 종교적 관점을 가지도 있던 사람들에게 이단이라는 오명하에 적용된 경우들이 적지않다.
'악마의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장면을 들어보라고 하면, 악마의 추종자들, 분리파 교회 신도들, 이교도들, 그리고 마녀로 간주되었던 자들을 처형했던 일이다.'(Paul Carus.op.cit.p.343)는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칼빈에게도 노골적으로 자행되었다.
조찬선에 의하면, '칼빈은 형제를 미워하고 판단하고, 배척하는 죄를 범했다. 그는 성경을 들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살인을 저질렀다. 죄명은 이단이었다.'(조찬선 op.cit.p.110)라고 하였다.
그리고 칼빈
칼빈
2005-0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