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통치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닌 테러
칼빈을 반대하거나 칼빈과 다르면 이단으로 간주
* 칼빈의 제네바 시에 대한 통치원리(1) 칼빈의 통치원리 제 1원리는 칼이며 힘이었다.
칼빈의 제네바 통치의 본질은 단연코 칼이었다.
그가 행한 것에 대한 포악한 행위들을 본질을 감추어 두고 거룩하게 포장으로 종교 개혁을 한 것처럼 역사를 기만하고 있지만 칼빈의 원리는 단연코 칼과 힘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칼빈이 다음과 같이 외친 근거가 이를 잘 말해준다.
'하나님의 명예를 위하여(칼빈은 폭력사용을 정당화 하기 위해 계속해서 이 말을 함부로 쓰고 있다) 쓰라고 그들에게 칼을 주어진 것이다.
그리고 칼빈은 영주들을 향해서 쉬지않고 이단자를 제거하기 위해 칼을 휘둘러야 한다고 열을 올렸다.'(stefan Zweigh.op.cit.o.175,190 )고 카스텔리오는 증언했다.
'칼을 휘둘러야 한다'는 칼빈의 외침과 그의 실제 통치속에 칼은 철저한 그의 통치원리였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는 칼빈이 그리스도의 이름이니,하나님의 영예니 하는 말들을 무수히 동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용하는 것이며 위장된 것이지 결코 그리스도를 위한 일도, 하나님의 영예를 위한 일도 아니다.
도리어 그의 교리적 실체로 보나, 긴 역사적인 안목으로 보았을 때 칼빈의 행위들을 그리스도와 생명의 하나님의 모든 것을 짓밟은 만행에 지나지 않는다.
칼빈은 칼에 의존한 칼의 사람이다.
그의 원리는 그리스도와 성경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참으로 성경의 생명의 세계관이 요구하는 생명의 복음적 방식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2) 욕설과 감옥과 사형장이 그의 통치의 근거였다.
세르베토는 칼빈의 다음 과정을 통해서 세상을 떠났음을 카스텔리오는 증언하였다. '최초의 경고는 욕설이요, 두 번째 경고는 감옥이었다.
세르베토는 사형장에 끌려간 채로 불 타 죽어서야 이 감옥을 떠날 수 있었다'(Ibid. p.174)고 하였다. 이 법칙은 칼빈이 권력이 있을 때 이어지는 법칙이었다.
세르베토만이 그렇게 감옥을 떠난 것이 아니다. 칼빈의 묵인하에 종교국이 자행한 무자비하고 잔악한 사형으로 이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한두 사람이 아니었다. 칼빈이 행한 제네바 통치의 현실을 막연한 기대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분명한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고 그가 어떤 참혹한 수단과 방법으로 제네바를 다스렸는가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미 그 사례들을 제시하였지만 그가 얼마나 터무니 없는 방법과 무력으로 사람들을 잡아 들이고 고문하고 사람들을 사형시켜왔는가에 대한 역사적 실상을 정면으로 직시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칼빈에 의한 살상에도 불구하고 그의 교리가 아직도 성경을 지배하고 있는 정통으로 행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3) 칼빈의 의지 하나만이 제네바 시의 통치원리였다.
제네바 시는 오직 하나의 의지에 의해서 지배 되었다.
그것은 복음과 전혀 상관이 없는 칼빈의 의지였다. '제네바 시는 단 하나의 의지 칼빈의 의지에 복종하는 상태가 되었다.'(Ibid. p.83)고 말한다.
불행하게도 여기서 말하는 칼빈의 의지는 칼에 의한 의지였고, 무력을 앞세운 의지였다. 그러므로 칼빈이 제네바 시민들에게 제시한 교회 계율 앞에는 보이지 않는 무기가 있었는데 그것은 무력이라는 칼이었다.
제네바 시민들은 칼빈이 요구한대로 교회 계율이라는 것에 복종을 선서했어야만 했다. 이를 거부하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은 제네바시에서 살 수 없었다.
그런 사람들은 성찬식에도 참석할수 없고 그렇다고 이웃과 함께 생활할 수도 없었다.
그러므로 ' 시민으로서도 끝장이 나 버린다. 아무도 그와 이야기 하거나 물건을 팔거나 사서는 안되었다.
그럼으로써 종교적 관청이 이용하는 순전한 종교적 조치가 곧장 사회적인 조치로 바뀌고 사업상의 보이콧으로 바뀌었다.
그런데도 공적인 참회를 거부하면 칼빈은 그에게 추방을 명령하였다. 칼빈의 적대자는 비록 가장 존경받는 시민일지라도 제네바에서는 계속 살 수 없었다.
이 번개를 손에 든 칼빈은 자기에게 저항하는 모든 사람들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Ibid. p.44,45)
따라서 사람들은 그에게서 그리스도를 본 것이 아니라 마력적인 종교를 위장한 위선의 칼을 보는 것이다.
종교의 자유를 내걸고 투쟁을 하다가 일단 그 손에 권력이라는 칼이 주어지면 상대방을 제거하기 위해 무자비한 칼을 휘두르는 것이 칼빈의 통치이념이었다.
(4) 칼빈의 원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니라 테러였다.
칼빈의 곁에서 교육목사로 활동하며 칼빈이 일거수 일토족을 지켜본 카스텔리오는 증언하기를 '칼빈은 자신의 최종적인, 가장 좋아하는 논리의 근거인 테러로 넘어간다.-- 침묵하지 않으면 화형대로 가리라.'(Ibid. 1998, 4. p.176)고 증언하였다.
이는 칼빈이 얼마나 테러적인 방법을 자신의 통치수단으로 사용했는가를 잘 말해 준다.
이러한 칼빈의 통치와 행동철학의 기반은 그리스도와는 무관한 것이었음을 확인해 준다. '칼빈의 비밀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모든 독재의 영원한 법칙 즉 테러에 의해서 가능한 것이었다.'(Ibid. p.78) 는 칼빈의 행위의 특징은 그가 모든 정적들이나 시민들을 테러로 제압하고 그 압제하에서 제네바 시를 자신이 요구한 바대로 통치해 나갔다.
이는 결과와 상관없이 질서있는 복음의 도시가 아니라 폭력에 의한 칼빈과 제네바 시였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카렌 브린톤은 고발하기를 '카톨릭이든 프로테스탄트이든 그들과 의견을 달리하는 자들을 박해하는 경우가 많았으니, 즉 반대자들을 박해하거나 추방하거나 투옥하거나 또는 죽이기까지 하였다.
고전적인 예는 발빈이 세르베투스를 규탄하고 처형한 경우인데, 이 밖에도 다른 예는 많다.'(A History of Civilization-Crane Brinton외 2인. 세계문화사, 한국판. 을유문화사. p.112)고 하였다. 무력과 탄압과 테러에 의한 통치였다는 것을 반증해 주는 것이다.
(5) 자신을 반대하는 모든 반대자들을 이단으로 간주한 칼빈
'칼빈은 자신은 잘못을 범하지 않는다는 망상에 사로잡혀서 모든 반대자들을 이단으로 어겼다. 그리고 자신의 신학이론에 대한 비난은 국사범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신학자 볼섹(stefan Zweigh.op.cit.p.147. ;주; Hieronymus Bolsec. 제네바에 널리 알려진 학식이 풍부한 의사로 볼섹은 도미니카 수도사 출신으로 칼빈의 학설, 즉 예정설에 대하여 완강하게 공개적으로 도전하였다.
그러나 시민들의 저항으로 볼섹은 도시에서 추방되는 조건으로 석방되었다.
그를 추방하는 대신 세르베토를 체포한 것이다.)에게 답변도 하지 않고, 그를 곧장 감옥에 쳐 넣었다.'(Ibid. p.147)고 하였다. 이렇게 행한 이단정죄 행위방식은 역사적으로 그의 후계자들에 의해서도 그대로 계승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곧 참혹한 고문과 살상을 의미하였다.
그리고 그 죄인이라는 것이 살인이나 도적과 같은 것들이 아니었다. 칼빈은 '성경구절 중에서 한 구절만이라도 그 해석이 칼빈과 일치하지 않으면 이단으로 몰릴수 있었다. 일단 이단이라고 낙인이 찍혀지면 그는 숙청의 대상이 된다. 숙청은 경중에 따라 추방, 투옥, 사형등으로 구분되었다.(조찬선 op.cit.p.91)
(6) 교리적인 이유와 배경 - 의식은 사고와 행동을 결정한다.
칼빈의 사악함은 첫째는 그의 의지에서 나왔으며 이를 지지해 준 것은 다름아닌 그의 교리사상이었다.
증언하기를 '이와같은 실제젹 결과(학정)는 칼빈신학의 특징적 교리들 - 신의 선발과 운명의 예정과 무관한 것이 아니었다'( A History of Political Theory- Georgy H. Sabine & Thomas Landon Thorson ; 정치사상사 한길사 p.484)는 지적에서 보듯이 결코 그들의 터무니 없는 교리 및 사상과 관련이 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의 교리가 다른 사람들의 생명과 목숨을 유린해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뒷받침을 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그들의 교리적 정체가 그리스도와 무관하다는 것을 실증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목해야 할 점은 칼빈과 칼빈주의의 교리가 왜 이와같은 만행을 가능케 하는가에 대한 본질적이고 심층적인 분석을 해야만 한다.
칼빈과 칼빈주의자들이 그리스도 예수의 가르침이나 세계관과 다른 위장된 유사 논리를 가지고 그것이 마치 그리스도 예수의 가르침이라도 되는냥 하면서 자신들의 기준에 근거해서 사람들과 목숨과 생명을 탈취했다면 이것보다 어처구니 없고 심각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더더욱 칼빈주의에 대한 냉철한 분석을 할 필요가 있다. 칼빈과 칼빈주의자들이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사랍들을 죽였으니 그리스도 예수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칼빈주의의 정체는 당연히 역사 앞에 공개되어야만 한다.
칼빈이 이와같이 테러적 방법으로
칼빈
2005-0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