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데반, 베드로 그리고 가룟 유다
성경의 인물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점검해 본다
"인간의 선한 양심은 하나님 앞에 무의미한 것이다 하나님이 보시는 ‘의’는 인간적인 의로움, 선함, 착한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는 믿음이다"성경은 완벽한 사람들의 완벽한 성공기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완전하신 분은 오직 예수님 한분이시다.
그러나 불완전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은혜와 기름부음을 부어주셔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쓰임 받도록 하셨다.
그들의 대부분은 인간적으로 연약하고 때로 실수하며 잘못을 저지르는 보통의 사람들이었다.
성경을 보면 크게 네 부류의 사람들로 압축해볼 수 있다.
첫째 부류는 하나님을 잘 믿고 잘 쓰임 받고 끝까지 승리한 사람들이다.
둘째 부류는 하나님을 잘 믿지 않거나 하나님을 몰랐다가 하나님을 알고 믿게 되면서 믿음에서 승리한 사람들이다.
셋째 부류는 시작할 때 하나님을 잘 믿었다가 나중에 믿음을 저버리고 패배한 자들이다. 넷째 부류는 처음부터 악으로 시작하여 악으로 끝난 사람들이다.
예수님의 족보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놀라는 부분이 있다. 며느리와의 관계를 통해 후손을 본 유다라든지, 이방 족속의 기생이었던 라합이라든지, 이방 여인인데다가 재혼까지 한 룻이라는지, 충실한 신하를 살해하고 그의 아내를 빼앗은 다윗과 같은 사람이 예수님의 육신의 조상이 된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시는 것이 있다. 인간의 선(善)과 의(義)는 하나님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무리 부족하고 결함이 많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을 긍휼가운데 들어 사용하신다.
만일 성경이 특별한 사람들의 특별한 성공만이 있었다면 우리에게는 소망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들을 택하셔서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사용하셨고, 이를 통해 부족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누구든지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셨다.
스데반은 초대교회 사도들에 의해 임명된 일곱 일꾼들 중 한 사람이다. 하나님은 성령 충만하고 신실한 스데반에게 놀라운 권능과 지혜를 부어 주셨고,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스데반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개중에는 스데반을 정죄하며 미워하는 이들도 있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스데반은 예수님을 사랑하며 순교를 할 정도로 믿음을 잘 지킨 사람이었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만을 믿고 신뢰하며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나아갔다.
스데반과 같은 삶은 믿는 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이상적인 삶이라 할 수 있다. 스데반은 예수님을 알고 믿게 되었으며,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 가운데 교회와 많은 영혼들을 섬겼으며,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믿음을 지켰다.
베드로를 살펴보자. 성경 곳곳에는 예수님의 충직한 제자인 베드로의 모습이 보인다.
반면 자주 실수하고 넘어지는 베드로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그의 결정적인 실수는 예수님께서 잡혀가시던 날 일어났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베드로, 예수님을 바라보며 물 위를 걸었던 베드로, 예수님을 따라가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버린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번씩이나 부인한 것이다.
또한 예수님의 제자들 중 가장 심각한 죄에 빠진 사람이 있었다. 바로 가룟 유다이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아넘겼다. 예수님과 3년의 공생애를 함께하며 동거동락했던 가룟 유다는 미련없이 예수님을 버렸고, 예수님이 주신 생명의 말씀을 오랜 시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생각대로 나갔다.
베드로와 가룟 유다는 둘 다 죄인이었다. 그러나 이 두 사람 사이에는 엄청난 신앙의 격차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바로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 자비를 체험할 수 있는 ‘회개’가 있었느냐 없었느냐의 차이이다. 또 한가지는 자신의 의로움을 의지하는 신앙과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는 신앙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한 후 주님을 향한 죄송한 마음과 자신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슬피울었다. 하지만 베드로는 죄로 인한 수치심과 자책감으로 주저앉지 않았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을 의지하며 다시 예수님 앞으로 나아갔다. 비록 죄인이었지만 한결같이 하나님 앞에 서 있던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활 후 예수님의 사랑과 긍휼 안에서 치유를 받았다.
반면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넘긴 자신을 바라보며 후회하고 괴로워했다. 양심의 가책과 죄책감은 그를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몰고 갔다. 그는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죄사함의 은혜를 바라보지 않았다.
‘죄’의 의미 중에는 ‘과녘에서 벗어나다’는 뜻이 있다. 이것은 말씀에서 벗어난 모든 것이 다 죄라는 의미이다. 죄의 무게나 크기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베드로와 같은 죄인이든 가룟 유다와 같은 죄인이든 모두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자신의 선함과 의로움을 의지하지 않기 원하신다.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사람이 한 명도 없듯이, 우리는 모두 죄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의인이 될 수 있는 길을 예수님을 통하여 마련해 놓으셨다.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여 회개하는 모든 죄는 다 용서를 받게 되는 것이다[요일1:7-9].
가장 심각한 문제는 말씀에서 벗어난 죄를 죄로 인식하지 못하고 합리화하는 것, 보혈의 공로와 은혜를 믿지 않는 것, 인간적인 의로움을 의지하는 것이다.
오직 우리는 예수님을 의지하고 보혈의 공로를 의지함으로 승리할 수 있다.
[그림: 엘 그레고(1541-1614)의 '회계하는 베드로']
2004-1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