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번역과 보수신앙]우리말 번역성경 개관/개역성경과 그 이후
한국 교회 전체의 성장과 진정한 연합을 위해서라도 올바른 성경 번역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
글 : 나채운 박사 신학박사
전 장신대 대학원장
대한성서공회성서번역 개정위원
1. 우리말 번역성경 개관
그리스도인이 바른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바른 성경을 갖는 것처럼 중요한 일은 없다. 여기서 바른 성경이라 함은 바로 번역된 성경을 가리킨다.
바로 번역된 성경이란 말은 또 성경의 번역이 잘못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성경의 번역은 인간이 하는 것이고, 그 번역을 하는데 있어서는, 성경의 원본과는 달리, 하나님의 영감이 없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성경이 잘못 번역되는 경우에는 그것에 따른 해석이 잘못되고, 성경의 해석이 잘못되면 목회자의 설교도 잘못되고, 목회자의 설교가 잘못되면 그것에 따른 성도들의 신앙생활도 잘못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에서는 개역성경(1938년 발행)이 오랫동안 사용된 이후 다른 번역이 나오고부터 성경번역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어 지금도 대한성서공회 외에 다른 교단들의 연합으로 성경 번역을 진행함으로 교계에 적지 않은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이제 여기서 잠깐 우리나라의 성경번역의 역사를 개관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 최초의 성경번역은 스코트랜드 선교사 존 로스가 1882년에 출간한 ‘예수셩교 누가복음젼셔’이다. 이 복음서에서 특기할 만한 한 가지는 신(神)에 대한 표기를 ‘하느님’으로 한 것이고, 신격에 대해서는 대두법(擡頭法)으로 경외감을 나타낸 것이다.
대두법이란, 성 삼위를 비롯해서 신격을 나타내는 ‘주’(主)에 대해서 특별한 존대를 나타내는 표로 그 어휘 앞이나 뒤에 한 칸을 띄어 쓰는 법을 말한다(초기 성경에서는 전 문장이 붙여쓰기를 하였다). 이 대두법은 영어에서 신격에 대해 대문자를 쓰는 것과 같은 것으로서, 동양의 문자에서는 대문자가 없으므로 띄어쓰기로 나타내는 것인데, 중국어성경에서는 신(神) 또는 상제(上帝)에서만 쓴다(일어성경에서는 일체 쓰지 않는다). 로스역 누가복음젼셔는 그 다음 해에는 신에 대한 표기를 ‘하나님’으로 바꾸고, 대두법의 위치도 어휘 앞으로 바꾸었다.
다음, 1887년에 출간된 ‘예수셩교젼셔’는 누가복음젼셔 출간 후 5년만에 출간된 신약전서로서 참으로 획기적인 것이다.
이 최초의 신약전서를 출간하는 데는 한국인 서상륜, 이응찬, 백홍준, 김진기, 이성하, 이익세, 최성균 등 한국인들이 번역 조수로 일했는데, 그들이 도움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번역된 중국어성경과 일본어성경의 한자를 읽어서 어느 정도 뜻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우리말 활용은 충분치 못했던 것이 엿보인다.
그 예를 들면, 요한복음 1:36에서 세례자 요한이 한 말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개역)가 “하나님의 양 새끼를 보라”로 되어 있고, 요한복음 6:53에서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가 “인자의 고기를 먹지 아니하고 ...”로 되어 있다. 로스 선교사가 우리말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던 점도 엿볼 수가 있다.
다음으로, 신구약 성경전서가 최초로 번역된 것은 1911년인데, 이 번역에서는 번역이 크게 발전된 양상을 보인다.
예를 들면, 위에서 예로 든 요한복음 1:36의 로스역 “하나님의 양새끼를 보라”가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로 바뀌고, 또한 요한복음 6:53의 로스역 “인자의 고기를 먹지 아니하고 ...”가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로 바뀌었다. 이렇게 큰 발전을 보게 된 것은 로스 선교사의 개인역 다음으로는 24년이라는 시간적인 간격도 있었지만 그보다도 더 주요한 요인은 언더우드 아펜젤러 마펫, 피터스 게일 등 13명의 선교사들이 번역위원회를 조직하여 번역하게 된 까닭이었다.
2. 개역성경과 그 이후
다음으로는, 1938년 이래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대다수 교회가 예배용으로 쓰고 있는 소위 ‘개역 한글판’이 출간되었다. 이 번역성경 작업은 소위 ‘구역’이 출간된 1911년에 시작하여 27년이나 걸려서 출간을 본 것으로서, 1998년에 개정판이 나올 때까지 60년 동안 거의 독점적인 지위를 가지고 정착이 되다시피했다. 그러나 이 개역성경은 그 실질에 있어서는 만족할 만한 번역이 못 된 것이 사실이다.
첫째, 어휘와 문장으로 볼 때 구역으로부터 큰 발전이 없다. 그 한 예증을 들면, 요한복음 1:1-14에서 38개어 중 개역에서 구역의 어휘를 그대로 쓴 것이 32개 어이고, 새로운 어휘를 쓴 것은 기껏 6개 어 밖에 안된다.
한편 개역에서는 구역의 바른 번역을 도리어 잘못되게 한 것도 있는데, 예를 들면 마태복음 6:9의 어휘 표기에서 구역에서는 ‘나라가’로 바로 되어 있는데, 구역보다 훨씬 뒤에 나온 개역에서는 이미 폐기된 옛 문법을 따라 ‘나라이’라고 잘못 되어 있으며, 에베소서 6:14의 ‘흉배’(胸背)는 잘못된 것이고(무장이 아님), 구역의 ‘호심경’(護心鏡)이 바른 것이다. 고린도후서 1:9의 번역도 구역에서는 “죽을 줄 알았으니” 로 바로 번역되었으나 개역에서는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로 잘못 번역되어 있다.
개역성경 다음으로 해방 이후에는 우리나라 학자들에 의해, 그전까지의 문어체를 탈피하고 구어체로 몇 번의 성경 번역이 행해졌다.
즉 대한성서공회에서 1967년에 새번역 신약전서, 1971년에 공동번역(성경전서는 1977년) 등을 출간하였으나, 교회 예배에서는 널리 사용되지 못하고 개인적으로나 교회 학교용으로 조금 쓰일 정도였다.
번역의 정확성으로 말하면 이상의 새번역 신약전서나 공동번역은 개역성경보다 훨씬 우수하였으나, 현대어로 된 새로운 번역들이 교회 예배에서 널리 쓰이지 못한 것은 개역성경의 문어체가 더 권위 있어 보이고, 또 오랫동안 익숙해진 성경이어서 더 선호하게 된 까닭이다.
개역성경은 그것이 오랜 기간 독점적인 권위를 가지고 쓰인 점에서 영어역 킹 제임스 성경(King James Version) 과 방불하다. 이 영어역은 1611년에 번역 출간되어 1885년에 개정판이 나오기까지 우수한 번역으로서 다른 번역이 나올 수 없을 만큼 독점적인 권위를 가졌다.
그러나 그러한 번역도 시대의 언어의 변천과 학문의 진보에 따른 시세에는 어찌할 수 없어 새로운 개정판에 의해 퇴출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우리말 개역성경도 똑같은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대한성서공회에서는 개역성경의 이러한 실상을 인지하고, 한편으로는 앞으로 어떠한 번역이, 현대문으로 구어체로 실제 내용면에서 더 훌륭한 번역이 나와도 한국 교회가 예배용으로 사용하는 데 있어서 개역성경을 능가하여 사용될 가능성이 전혀 없을 것을 감안하고, 개역성경의 개정작업을 필자에게 위촉하였고, 필자는 이 개정안을 내는데 1983년 9월부터 3차에 걸쳐 10년이나 걸렸다.
-계속 됩니다-
2004-1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