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전쟁 & 찬양과 경배 -제5편-
영적 전쟁과 영적 찬양
글 : 정바울 박사 / 마하나임세계선교회 대표 사진 : 춤추며 찬양하는 모아실 페레이라 목사(올림픽역도경기장 성회)
3. 원수의 머리를 쳐!
우리가 부르는 찬양 중 ‘뱀의 머리를 밟아라’는 찬양이 있다. 뱀은 곧 마귀, 용으로 칭해지는 사단이다[계12:9]. 이들의 운명은 이미 창세기 3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해졌다.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창3:15].
예수님은 사단의 머리를 밟으신다. 또한 사도 바울도 사단의 최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롬16:20]
단순히 손과 발이 잘리는 것이 아니라 머리가 밟힌다는 것이다. 이는 곧 그 생명이 끝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사단의 운명은 완전한 패배이다.
우리는 찬양과 경배를 할 때 춤을 추며 하나님을 찬양하고[시30:11], [시149:3], [시150:4], 걷고 뛰면서 찬양하며[삼하6:16], [행3:8], 또 서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시135:2], [시134:1]. 이 때 사단은 우리 발 밑에 짓밟혀 부수어지며 땅 위에 재가 된다[겔28:18].
물론 우리는 꼭 사단을 밟을 목적으로 춤을 추지는 않는다. 하나님 앞에서 춤을 추는 것은 하나님을 기뻐하는 우리 마음을 우리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그 보좌 앞으로 나가는 발걸음은 극도의 흥분 상태가 될 수 밖에 없다.
기쁨과 흥분과 즐거운 상태에 있을 때 우리는 가만히 있지 않는다. 웃고 소리를 지르며 춤추며 즐거워한다.
만왕의 왕 예수님을 맞이할 때 어떻게 가만히 앉아서 무표정한 얼굴로 있을 수 있겠는가?이렇듯 하나님을 기뻐하며 그분을 위해 춤을 추며 찬양할 때, 그 찬양으로 인해 사단은 힘을 잃고 그 머리는 우리의 발 밑에 힘없이 부서진다.
특별히 구약에서 제사장들은 하나님께 요제의 제사[레9:21]를 바쳤는데, 이 요제는 제물을 흔들어 바치는 제사법이다.
은혜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하나님께 드리고 있다[롬12:1].
우리가 우리 몸을 흔들어 요제의 찬양의 제사를 드릴 때, 그 몸과 땀과 희생의 제사는 하나님께 열납되는 향기로운 제물이 된다.
우리는 결코 희생의 대가를 치루지 않고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하나님께 열납된 아벨의 제사는 ‘생명의 피’가 있는 희생의 제사였다. 하나님께 생명을 드리는 예배라야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사가 된다.
4. 바울과 실라의 찬양
바울과 실라의 찬양은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준다. 왜냐하면 이 두 사도가 처한 상황이 하나님을 찬양할만한 환경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매를 아주 많이 맞았고, 몸에는 피가 고여 맺혀 있었고, 손과 발은 착고에 채워졌으며 차갑고 어두운 감옥에 갖힌 것이다. 그것도 범죄하다가 받는 형벌이 아니라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다가 당한 일이다.
우리도 살면서 이와 같은 상황에 처할 때가 있다. 동서남북이 다 막히고 도저히 해결책을 찾을 수 없을 만큼 힘들어 질 때가 있고, 때로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러나 사방이 다 막혔다 해도 막히지 않은 한 곳이 있다. 바로 하나님이 계신 ‘위’이다. 가장 절박하고 어려운 순간, 우리는 기도, 예배, 찬양, 말씀이라는 추상적인 것 보다 구체적인 해결 방법을 찾기 원하며, 우리가 직접 나서서 뭔가 행동할 수 있는 해결책이 제시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다.
하나님은 가장 절박하고 어려운 순간 우리가 하나님을 전심으로 찬양하기 원하신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께 대한 ‘신뢰의 표현’이다. ‘전능하신 하나님, 지금 제가 처한 현실은 단지 눈에 보이는 현상에 불과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위대한 능력을 믿고 의지합니다. 저에게 있는 이 어려운 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알 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믿음이 있어야 최고의 위기 상황이 왔을 때도 ‘평강’을 잃지 않는다.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믿음’을 굳게 지켰고,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여전히 찬양과 경배를 받으실 좋으신 하나님이셨다.
그들이 하나님을 찬양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큰 지진이 나고 옥터가 흔들렸으며 감옥의 문이 열렸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지는 역사가 일어났다. 바울과 실라는 단지 하나님을 찬미했을 뿐인데, 하나님의 응답은 매우 구체적으로 그들에게 이루어졌다.
* 맺는 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솔직히 그 사랑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이고 감당하지 못할 정도이다.
세상 어느 누가 ‘나’같은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속죄의 제사를 대신할 수 있겠는가?
그 큰 사랑을 입은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은 죄인된 우리를 불러 예수 그리스도 통해 죄사함의 은혜를 주시고 구원을 주시며, 천국 백성의 삶을 지금도 조금 맛보게 해주셨다. 바로 하나님께 예배 드리며 찬양하는 삶이다.
천국에서 우리는 어떻게 예배를 드릴까? 사업을 걱정하고 자녀들을 염려하며 하나님을 찬양할까? 아니면 당장 밀려있는 부채의 문제나 진로에 대한 걱정 때문에 한숨을 쉬며 찬양할까? 뭔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찬양을 할까? 찬양을 해야 된다고 하기 때문에 억지로 찬양을 할까? 아니면 요란스럽게 노래하고 손을 드는 것이 성격에 잘 맞지 않기 때문에 그냥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할까?
아니다. 그곳에서는 단 한 가지 마음만 있을 것이다.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 생각, 뜻과 정성이 온통 하나님을 향해 집중될 것이다. 우리는 그분의 거룩한 임재 앞에서 떨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기쁨과 환희에 젖어서 최고의 찬양을 하나님께 드리게 될 것이다.
바로 그것이 지금 이 땅에서 우리가 드려야 할 찬양이다.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며 그 사랑에 더 깊이 빠지며 매일 그 사랑을 고백하자!
[제6편에 계속]
2004-1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