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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번역과 보수신앙] 성경의 번역과 소위 ‘보수신앙’

교회 연합을 빙자하여 종교 바벨탑을 쌓고자 성경 번역을 반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글 : 나채운 박사
신학박사
전 장신대 대학원장
대한성서공회성서번역 개정위원
사진 : 사해 두루마리 사본 일부, 1952년 발견된 구약성경으로 히브리어 사본이다.

4. 성경의 번역과 소위 ‘보수신앙’

기독교 역사상 성경의 번역이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당장 환영을 받거나 수용이 되지 못하고 도리어 배척과 거부를 당한 것이 참으로 불행스런 일이었다. 그것은 성경의 실용적 가치에 대한 이해가 없었기 때문에 교회 자체가 의도적으로 자행한 우매한 처사였다.

교회는 성경을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 그것을 기록한 문자 곧 구약을 기록한 히브리 문자와 신약을 기록한 그리스 문자는 ‘하나님의 문자’,‘거룩한 문자’로서, 세속의 다른 문자로는 대체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단지 로마 교황청의 문자인 라틴어만은 예외적으로 인정하여 제4세기에는 유명한 불가타가 나오기도 하였다.

성경을 세속의 문자로 번역할 수 없다는 사상 때문에 수난을 당한 최초의 사건은 1384년 성경을 영어로 번역한 위클리프(Wycliff)로서, 그는 그의 번역이 발견된 후에 이미 세상을 떠난 상태였는데 부관참시(剖棺斬屍)까지 당하였다. 1526년에 신약을 번역한 틴데일러(Tyndale)는 화형(火刑)을 당하기도 하였다.

전 세기에까지도 1946년 영어역 개역 ‘Revised Standard Version’ 이 출간되었을 때 뉴욕의 한 침례교회 목사는 그 새로 개정된 성경을 사탄의 소작이라 매도하고 그 책들을 사서 모아 불태우면서 예배를 드리기도 하였다.

성경의 번역 자체가 금지 당한 것은 무지한 교권주의자들의 소행 탓이었지만, 성경이 번역 출간되어서도 거부당한 것은 성경 번역의 필요와 목적에 대한 성도들의 몰이해 때문이었다.

성경 번역에 대한 성도들의 몰이해는 우리나라에 있어서도, 아니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그러한 것을 부인할 수 없다. 1938년에 개역성경이 출간되었을 때도 그것이 일반적으로 쓰이기까지는 5년 이상의 시일이 요했으며, 1998년에 발행된 개역 개정판도 아직껏 대다수의 교회가 예배시에 사용하는 것은 거의 외면시 되고 있는 상황이다.

새로운 번역에 대한 이러한 외면 내지 거부적 현상은 비단 성경에 대해서만 아니라 주기도와 사도신경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사실대로 말하면, 우리말 성경과 주기도, 사도신경의 오역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심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새로운 번역에 대한 외면 내지 거부는 또 그 어느 나라보다도 더 심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교세에 있어서는 한국 교회의 교세보다 훨씬 열세인 중국과 일본 교회에 비해 성경 번역에 있어서는 크게 뒤지고 있다는 일은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주기도의 마지막 부분의 접속사 ‘hoti’(대개)의 번역을 처음에 잘못 번역하였으나 나중에 그 잘못된 것을 알고는 즉시 개역을 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면 새로운 번역에 대한 외면 현상은 무엇에 기인하는가?

그것은 번역 성경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기인한다. 즉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기록한 것으로서, 일점 일획도 잘못됨이 없다는 성경관이 그 번역된 성경에까지 잘못 적용되어서 그러한 것이다. 많은 성도들은 우리말 성경 그 자체가 번역에 있어서도 일점 일획도 틀림이 없이 정확무오한 줄 알기 때문이다.

우리말 성경 번역이 다른 어느 나라 성경번역보다도 뒤떨어져 있는 것과 일반 성도들이 새로운 번역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한국 교회 교인들의 잘못된 보수사상 때문이다.


5. 진정한 보수는 바른 것을 보전 수호하는 것
1967년에 청소년을 위한 쉬운 번역으로 새번역 신약전서를 낼 때에 초역자가 개역의 ‘인자’(人子)라는 말을 ‘사람의 아들’(영어로는 The Son of man, 일어로는 人の子, 공동번역에서는 사람의 아들) 이라고 번역하였으나 목회자들이 거부하여 ‘인자’라는 어려운 말 그대로 두게 되었다.

우리말의 ‘독생자’도 원어상으로 따지면 옳지 않다. 원어 ho mono-genes huios 는 영어성경으로도 킹 제임스 성경(King James Version) 이래 오랫동안 ‘the only begotten Son’ 으로 잘못 써왔으나 그것이 잘못 번역된 것을 알게 된 1885년부터는 ‘the only Son’ 으로 쓰고 있다. 또한 그 영어대로 또 잘못 번역한 중국어역의 ‘독생자(獨生子)도 일부 번역판에서 ‘독자(獨子)로 바로잡고 있다.

중국어역의 ‘獨生子’를 따른 우리말 성경은 개역에서는 개정판에서도 ‘독생자’ 그대로 있고, 1967년의 새번역, 1971년의 공동번역, 2001년의 표준새번역 개정판에서는 ‘외아들’로 되어 있다 (1993년의 초판에서는 ‘독생자’). 그러나 우리말의 ‘외아들’로 엄밀히 따지면 바른 번역은 못된다. 왜냐하면, 원어의 바른 뜻은 예수가 출생하는 데 있어 하나님의 한 아들이라는 뜻이 아니라, 예수만이 하나님과의 사이에 유일하게 가지는 독특한 신분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유일하신 아들’ 이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영어역에서 ‘begotten’을 빼고, 중국어성경(現代中文譯本)에서 ‘생(生)’ 자를 뺀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우리말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고유명사) ‘여호와’(공동번역에서는 ‘야훼’)를 그대로 쓰는 것도 수구사상의 유물이다. 이에 대해서는 영어역(Jehovah/Yahweh)에서부터 중국어(耶和華), 일본어(エホバ) 모두가 초기 번역에서는 ‘여호와’를 썼으나 현대역에서는 한결같이 ‘주’(主)를 쓰고 있는 데도 우리말 성경에서는 개역 개정판(1998년)과 공동번역 개정판(1999년)까지도 ‘여호와’ 또는 ‘야훼’를 쓰고 있는 것이다. 다만 표준새번역에서만 세계적인 추세를 따라 ‘주’로 쓰고 있다.

성경번역에 있어서 보수적인 사상은 참으로 바람직하다. 그 ‘보수’라는 말은 바른 것 즉 진리를 보전하고 수호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바꾸어 말하면 성경의 어떤 번역이 지금까지 잘못되어 왔다면 언제든지 그것을 곧 바로잡는 것이 진정한 보수신앙인 것이다.

흔히 보수와 개혁, 보수와 진보를 대립적인 개념으로 생각하나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진정한 보수는 개혁을 동반하며, 그것은 또한 진보를 의미한다. 예를 들면 개역성경 주기도문의 ‘오늘날’을 개정판에서 ‘오늘’로 바로잡은 일은 바른 것을 보수하는 것이요, 바른 것에로 개혁(개정)하는 것이요, 그것은 진보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새로 바로잡은 개정판도 외면하는 한국 교회의 신앙은 얼마나 잘못된 보수이며 반개혁 반진보인가?

이러한 진정한 보수에 따른 개혁 진보의 면에서 볼 때, 한국 교회는 성경번역이나 주기도, 사도신경, 찬송가 가사의 번역에서, 교세로서는 우리보다 훨씬 열세인 중국이나 일본에도 크게 뒤지고 있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 개혁의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구교’라고 하는 천주교에도 크게 뒤지고 있다. 천주교에서는 주기도, 사도신경(종도신경)의 잘못된 번역을 현대문으로 바로잡은 지 수 십년이 되는 데도 개신교에서는 아직도 잘못 번역되어 있는 주기도 사도신경을 쓰고 있으니 구교와 개신교의 자리가 바뀌어 있는 것 아닌가?

예수께서는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라고 가르치지 않으셨는데 한국 교회는 잘못된 보수신앙 때문에 그렇게 잘못 알고 있다.

바울은 자신이 사형선고를 받은 줄로 알았다고 말한 적이 없는데 한국 교회 교인들은 개혁정신이 없음으로 그렇게 말한 줄로 잘못 알고 있다. 진정한 보수, 개혁, 진보가 없는 한국 교회에 예수님이 서실 자리도 없고, 루터와 칼빈이 설 자리도 없다.

2004-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