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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 일부 ‘자칭 지도자’들에게 일어나는 드라큐라적 현상과 우려

신앙을 앞세운 사특한 야심으로 권력에 뛰어든 기독 단체들
대개 ‘드라큐라’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알려지기로는 악마같이 사악한 존재로 알려져있지만, 드라큐라라는 존재가 가지는 본래적 의미는 기묘하고 음침한 용기를 지닌 큰 두뇌와 체력의 소유자로서 무한한 권력을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표상으로 말해지고 있다.

역사의 어느 시점부터 순수한 교회를 이용하여 신앙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권력자가 되거나 권력자 옆에서 위세를 부려 보고 싶어하는 드라큐라적 음모적 신앙가들의 정치 행위를 당연한 현상으로 치부해 왔다.

그들은 내부적으로는 거룩한 옷과 지식을 앞세워 기독교를 장악하면서, 자신들에게 맞서거나 거치는 존재자들에게는 가차없이 이단이라는 올가미를 씌워 제거하거나 죽였다.

한편으로는 소위 ‘교회갱신’이나 ‘기독교개혁’, ‘기독교윤리운동’을 부르짖으며 ‘하나님의 뜻’이니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구호를 내 걸었고,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모으며 자신들의 권력 지향적 카타르시스(Katharsis)를 교활하게 충족시켜 나감으로 기독교 역사의 한 구석을 장악해왔다.

교회사를 냉정히 들여다보면, 그러한 사람들은 예외없이 기독교와 신앙을 이용하였지, 결코 예수님을 위한 진리의 기독교가 아니라 특정 목사와 특정 대학 교수와 그들의 명예욕과 복음을 가장한 지배욕, 그리고 헤게모니적 윤리(?) 체계를 위한 기독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앙을 앞세운 거룩한 야심으로 권력에 뛰어든 그들에게 기득권이 확보되는 순간 불쌍한 영혼을 구제한다는 이름하에 인간을 형틀에 걸어 놓고 불태워 죽이거나 강물에 수장하여 심판하는 만행을 수없이 자행하였다. 그들이 권력을 잡는 순간 독선의 칼날을 세워 아무런 양심의 거리낌 조차 없이 신앙을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시키는 논리로 위장하고 역사를 피로 물들인 사례는 신 구교를 막론하고 역사책을 살펴보면 흔히 만날 수 있는 현상들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이러한 사람들이 지향하는 사상이나 교리 그리고 신앙관의 양태는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 굳이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들이 아니라 과거의 그런 정치적 기독교인들이 저지른 만행적인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국민들이 일어나 정치와 종교를 분리시키고 시민들에 의한 시민정부가 교회의 재산을 몰수하고 다시는 그러한 폭력과 테러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차단시켰다는 사실이다.

요즘 한국 교계 일각에서는 교회를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를 이용해서 교권장악은 물론 권력을 갖고자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인본적·인격적 성령운동(=위선적 성령 운동)등의 구호를 외치며 의의 일꾼으로 가장한 자칭 일부 교회 지도자들이며, 야심찬 목적으로 단체를 세우고 집단을 형성코자 한다.

그들이 교회의 사회적 역할을 내세우며 외치는 구호와 명분도 매우 그럴듯하며 화려하기까지 하다.

그들은 마치 자신들의 본토를 떠나 메이플라워(Mayflower)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갔던 청교도들과 같다. 청교도들은 메이플라워의 선상에서 평등과 자유, 모든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일하기로 결정하고 서명까지 하였으나, 정작 미국 땅에 내려서는 교권과 권력이 자신들의 손에 넘어오자 차별과 계급 그리고 학정과 이단 및 마녀사냥, 더 나아가 수 없는 원주민과 인디언들을 사정없이 죽이는 드라큐라적인 일을 자행하였다.

한국의 드라큐라적 교회 지도자들 또한 그들과 성격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실추된 한국 교회의 사회적 영향력이 그들로 인해 회복될 수 있을 것인지는 지켜볼 일이지만, 성경에서 예수를 옹립해 정치세력화를 이루려던 사람들의 강력한 요구를 예수께서 왜 거절하시고 그들을 떠나셨는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진리를 추구하는 386세대와 청장년 세대를 일으켜, 우리 나라를 정직한 나라로 변화시키기 원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004-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