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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께 닫힌 마음, 타 종교에 열린 마음

지금 시대의 교회의 모습을 보면 아이러니한 모습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혼돈과 미혹의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확고한 중심을 지켜야 할 교회가 세상을 따라 움직이며 변화되어 가는 모습은 위기감마저 감돌게 만든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목사가 절이나 카톨릭교회, 혹은 타 종교 회당에서 설교를 하고, 승려, 신부, 혹은 타 종교 지도자들이 교회 강단에 서서 설교하는 모습을 두고 ‘하나되고 연합하는 아름다운 종교’의 모습이라고 말한다. 이를 가장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사람은 당연히 구원의 확신이 없는 기독교 신자이거나 모든 종교에는 다 구원이 있다고 말하는 타 종교인들, 그리고 불신자들이다. 크리스마스에는 승려들이 교회에 축하의 메시지를 보내고, 석가탄일에는 목사와 교회들이 축하의 메시지를 보낸다. 마치 세계의 평화가 이 작은 연합의 시작으로부터 오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기독교 내에서는 가장 먼저 리더급 지도자들이 초청되어 절이나 이방 종교의 색채가 강한 학교, 강연장 등에서 연설을 하고, ‘불교가 보는 기독교, 불교신자가 보는 참다운 기독교 목사와 성도들’이라는 말도 안되는 유사 주제를 가지고 몇몇 대형 교회에서는 세미나를 개최했다. 타 종교를 향해 한없이 자비로운 일부 교회들의 모습을 보며, 이들이 과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이런 일들을 하는지, 사람과 세상을 기쁘게 하기 위해 이런 일을 하는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들 앞에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는 말씀이 무색하게 여겨지는 것은 왜일까?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고 죽으시는 그 순간까지도 타협하지 않으셨다. 그들의 빗나간 노력이 과연 타 종교인들에게 정확하고 올바른 진리의 복음을 심어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런 자리에서 선포되는 말씀 치고 “예수 이외에 구원 받을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행4:12)는 진리를 전하는 경우는 없다. 한결같이 그들은 ‘모든 종교는 나름대로 존중 받아야 하며, 모든 종교에는 구원이 있으며, 편협하고 이기적인 종교관을 깨뜨리고 우리 모두 하나가 되자’라고 외친다. 너무나 그럴듯 하다.
이들의 이중 잣대가 가장 심각하게 드러나는 부분은, 은혜의 시대인 지금 현 시대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바라보는 그들의 반응이다. 타 종교를 향해서는 한없이 너그러운 마음들이 성령의 역사 앞에서는 굳게 닫혀 버린다. 마치 가장 경계하고 주의해야 할 위험한 신앙이 ‘교회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그들은 성령의 역사를 철저히 배격하고 비판한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한국 교회에 임했던 부흥의 촛대가 중국,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로 옮겨진 것은 교회 안에서 말씀으로 역사하시는 성령님과 성령님의 기사와 이적, 은사(살전1:5)를 몰아냈기 때문이다. 성령님은 그분을 환영하고 사모하며, 진실로 갈망하는 정직한 심령들에게 임하신다.
처음에는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성령으로 시작한 교회와 목사들도 교회가 대규모로 부흥하고 성장하며 사람들이 많이 모이게 되면 가장 먼저 교회 안에서 성령을 소멸시킨다. ‘이제 말씀으로 돌아가자’고 외친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말씀을 떠나 역사하시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주님께서는 성령으로 시작하여 육신으로 마치는 자들을 향하여 어리석은 자라고 말씀하셨다 (갈3:3). 가장 비참한 신앙인의 최후가 성령으로 시작하여 육신으로 마치는 것이다. 그들이 갈 곳은 지옥이기 때문이다.
믿음의 결국이 영혼 구원임을(벧전1:9) 생각해 볼 때, 아무리 세상 살 동안 유명한 교회, 유명한 목사, 유명한 성도로 이름을 날렸다 할지라도 그 영혼이 지옥에 가게 된다면 그것은 실패한 믿음이다.

우리는 말씀에 비추어 점검해 보아야 한다. 입술로만 성령을 환영하고 사모하고 있지는 않는지, 진심으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며 나아가고 있는지, 모든 교회와 목사,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고 자성해 보아야 한다. 내 생각과 이론, 경험, 방법론에 맞는 성령만을 환영하고, 하나님의 절대적이며 주권적인 역사하심을 통한 성령의 역사를 무참하게 짓밟고 배격하지는 않았는지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 모두는 다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04-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