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베이라목사-하나님이 허락하신 우리 삶의 도전들
삶 안에 하나님이 주신 큰 성공과 번영이 있을 때 당신은 한결같은가 아니면 변하는가?
하나님의 재정을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부담으로 다가오는가 아니면 기쁨으로 다가오는가?
하나님을 섬기는 당신의 헌신은 한결같은가 아니면 상황과 환경에 따라 자주 변하는가?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주시는 도전에 하나님 보시기 합당한 반응을 보일 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도전에 대하여 회피해서는 안됩니다.
종교적인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도전과 질문들에 대하여 부정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주시는 도전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실 것입니까?
도전을 받는 것 자체를 싫어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때로 어떤 이들은 변화와 도전이 아닌 안주하는 삶을 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삶은 예측 불가능한 일들로 가득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통치하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고 통제하시는 우리는 안전합니다. 이러한 안전 가운데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도전을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반응을 보십니다.

* 우리 삶에 다가오는 네 가지 도전들
1. 성공을 통해 오는 도전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요6:2]
사람들은 큰 무리가 따르는 것을 즐겨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표적을 봄으로 따릅니다. 그럴 때 보통 사람들의 반응은 자신의 성공으로 인해 자부심을 갖고 때로 어떤 이들은 그것으로 인해 변질되기도 합니다.
종교적인 구습에 얽매인 사람들은 성공으로 인해 변질됩니다. 그러나 성령 안에서 사도적인 비전과 기름부음 안에 있는 사람은 성공 전후가 동일하며 한결같습니다.
당신은 홀로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을 선호합니까 아니면 뒤에 큰 무리가 따르는 것을 원합니까?
성공은 우리에게 큰 도전을 줍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동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환경과 상황에서도 자신의 심성을 동일하게 유지하셨습니다. 많은 무리가 따를 때, 많은 사람들이 치유를 받고 기적을 체험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때로 사람들로부터 비난과 힐난을 받을 때도 늘 한결같으셨습니다.
때로 어떤 이들은 잘 되고 성공할 때 주위 사람들을 잘 돌보지 않거나 이전에 잘 지내던 사람들을 외면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도적인 비전과 기름부음 안에 있다면 성공 이전과 이후가 동일할 것입니다. 그리고 홀로 십자가에 박힐 수 있는 마음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에게는 더 좋은 성공과 축복, 도전이 주어집니다. 그는 성공으로 인해서 변질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요6:3]
산에 올라가는 것은 존귀하게 되는 것, 높임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과 높은 차원으로 올라 가십시오. 성공으로 인해 변질되지 말고 예수님과 함께 높은 차원의 삶을 사십시오.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혔지만 그러나 그는 높은 차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갔고, 매를 맞아 몸이 성한 곳이 없을 때에도 여전히 예수님을 찬양하고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런 삶이 바로 높은 차원의 삶입니다.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요6:4]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유월절은 큰 명절이었습니다. 그 때 제사장들은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운집하여 제사를 드림으로 인해 제사와 관련한 희생제물을 파는 등의 행위를 통해 그들은 금전적인 이익을 챙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곧 부패와 타락의 요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유월절에는 보통 일만 팔천마리 정도의 양이 희생되었는데, 그것을 위해 성전에서는 장사를 하는 것이 흔한 풍경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죄사함을 받기 위하여 유월절을 지내면서, 그로 인해 죄를 짓는 격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고 변화를 받은 베드로가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는 죄사함을 받았으며, 이제 더 이상 동물을 드리는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다고 선포했을 때, 제사장들은 자신들의 돈벌이가 없어질 위기에 당면했으므로 불안해 했습니다.
하나님은 많은 것을 변화시키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변화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좋은 성공을 주실 때, 또 한편 성공을 거두어 가실 때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이십니까?
2. 물질을 통해 오는 도전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요6:5-6]
종교적인 사람들은 사람들의 것을 어떻게 갈취할 것인지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도적인 비전과 기름부음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베풀 것인가를 먼저 생각합니다.
이백 데나리온은 당시 노동자의 1년치 봉급 정도가 되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1년치 봉급을 다 내어 사람들에게 빵을 제공한다고 생각해볼 때 보통 사람들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위와 같은 경우 사람들을 집으로 돌려보냈을 것이며 각자 알아서 식사를 해결하도록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빌립의 중심을 시험하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사도적인 비전과 기름부음 안에 있다면 돈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 대해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런 도전을 이겨야 합니다. 우리 삶의 중요한 의미나 중심을 돈이 차지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3. 봉사, 섬김에 대한 도전
하나님을 섬길 때 우리는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물음에 대하여 빌립은 2백 데나리온을 언급했습니다.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찌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요6:7-9]
당시에 있던 사람들은 남자들만 오천명 가량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물음에 대하여 제자들은 사람들에게 빵을 가졌는지 물어봤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제자들이 자신의 것을 가져갈 줄 알고 없다고 말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소년에게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가 있었고 아이는 흔쾌히 자신의 것을 주님께 내어 드렸습니다.
제자들이 빵이 있느냐고 물어봤을 수 있지만 아이는 진솔했기 때문에 제자들이 묻지 않았던 물고기까지 있다고 대답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쯤 되더라”[요6:10]
예수님은 제자들로 하여금 사람들을 정돈하여 각자 자리에 앉도록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중심에 봉사와 섬김의 마음이 충만한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사도적인 비전과 기름부음 안에 있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중심을 시험하고자 아무 말씀을 안하시고 앉으라고만 하셨습니다.
우리는 남을 진정으로 섬기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모인 무리는 남자만 5천명 정도 되었는데 예수님은 사람들을 오십명 단위로 앉게 하셨습니다[눅9:14]. 그런데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로 떼를 지어 앉게 하는데
2009-10-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