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다운 부흥을 생각하며
깨어짐 속에서 무엇이 나오는가?
아주 옛날에는 소중한 물건들을 도자기나 옥합 등의 용기에 보관했다. 어떤 것은 처음부터 보관이 용이하도록 만들어진 것이 있는가 하면 어떤 것은 도자기나 옥합 자체를 깨뜨려야 비로소 안에 들어있는 물건을 사용할 수 있는 경우가 있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너무나 소중한 물건이기 때문에 도자기나 옥합은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깨어짐을 당하는 용기는 비록 그 가치가 사라지고 영원히 사용할 수 없게 되지만, 귀한 물건을 세상에 드러내기 위하여 얼마든지 희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를 담고 있는 옥합들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이며 교회이기에 교회 역시 예수를 담고 있는 옥합이라 말할 수 있다.
세상은 깨어진 옥합들이 품어내는 향기를 통해 옥합 안에 들어있는 향유의 가치를 알게 된다. 옥합이 깨뜨려지면 온 집안과 인근 주변 동네까지 향기로 덮을만한 향유가 나온다. 그러나 만일 향유가 들어있어야 할 옥합 안에 다른 것이 가득하다면 어떻겠는가?
한 예로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자주 대립되셨다. 그것은 그들의 옥합 안에 강퍅한 마음, 남을 판단하는 교만함, 시기심 등이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자주 그들의 마음을 깨뜨리는 말씀을 건네셨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어리석은 고정관념과 생각들을 고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는 말과 행동으로 반응했다.
그들 속에서는 남을 판단하고 비난하는 쓰디 쓴 덩어리들이 넘쳐났다. 누구도 그들 때문에 참 사랑의 하나님을 만난다거나 빛과 진리되신 예수님을 만날 수가 없었다. 그들의 삶이 하나님의 영광과 전혀 상관없는 삶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자신들은 스스로가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사는 거룩한 자들로 착각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옆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누구인지 조차 깨닫지 못했다.
흥미로운 것은 그들을 향하신 예수님의 반응이다. 예수님은 죄를 지어 고개도 못들며 사는 간음한 여인에게 절대 죄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그녀를 정죄하기 위해서 돌을 들고 달려온 많은 사람들을 향하여 남을 정죄하는 그 판단과 정죄의 죄악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 수 있도록 그들의 죄를 땅에 기록하셨다.
오늘날 교회는 옥합 속에 무엇을 담고 있는가? 세상을 진동할만한 향기를 품고 있는가? 아니면 스스로 만족하고 자족하지만 세상에 영향력이라고는 전혀 주지 못하는 이름만 옥합일 뿐인가? 또한 목회자와 성도들은 어떠한가?
한국 교회의 참다운 부흥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지음을 받은 옥합들 안에 향유를 가득 채우고 하나님께서 원하실 때 과감하게 자신을 희생하며 깨뜨릴 수 있어야 한다. 옥합이 깨뜨려져야 향유의 가치가 세상에 알려지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는 부흥을 사모하고 있다. 지금 이 상태로는 안된다는 것이 가장 솔직하면서도 정직한 진단 결과이다. 그래서 교회들마다 심각한 영적 지체상태와 미지근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부흥을 위한 모든 노력과 수고가 다 중요하지만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옥합들 하나 하나가 하나님 안에서 향기로운 향유를 담은 향유 옥합으로 변화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깨뜨림의 용기와 희생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향기와 편지들이 자기 역할을 다할 때 더 많은 자들이 복음을 듣게 되고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
영혼 대추수의 시작이 ‘기도’로 되었고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되었으며, 자신의 삶을 아낌없이 다 깨뜨린 성령 충만한 믿음의사도들에 의해 시작되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영혼 대추수의 마무리 작업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도’로 시작해야 하며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나가야 한다. 향유를 담은 옥합들이 자신의 삶을 아낌없이 깨뜨림으로 예수가 온 세상에 증거되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예루살렘은 중요하게 생각지 않고 땅끝과 열방을 먼저 구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삶의 현장이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향기로운 향유가 되어야 한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들에게 가장 향기로운 편지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부흥의 시작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다운 부흥은 옥합들이 향유를 가득 채우고 그것을 깨뜨릴 준비가 되었을 때 온다. 우리 마음과 생각에 있는 것이 입술을 통해 나오고 우리의 삶을 통해 표현된다. 하나님께서 나를 깨뜨릴 때 내 안에서는 과연 무엇이 나올지 점검해보는 신앙이 필요하다.
부흥
2006-05-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