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 인내와 승리
때로 우리는 뜻밖의 오해를 당하거나 억울한 상황에 처하면서 자기 자신을 해명하고 싶어하는
요셉의 생애에서 가장 힘든 순간은 어느 때였을까? 놀랍게도 요셉은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면서 어느 때가 가장 힘들고 어려웠는지, 억울했는지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단지 그가 한 말은 모든 것이 선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는 고백이었다.
[창50:19-20]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요셉의 이야기는 힘든 시험과 고난을 거치고 있는 모든 크리스천들에게 큰 힘이 된다. 우리는 창세기 후반부에 나오는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요셉의 생애를 보면서 의아할 정도로 궁금해지는 것은 위기의 순간을 대처하는 요셉의 태도가 어쩌면 그리도 의연한가 하는 것이다. 기록된 말씀을 보면 그는 결코 원망이나 불평하는 말,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이것은 그의 삶의 태도와 열매에서도 잘 보여지고, 사람들과 맺는 관계를 통해서도 잘 나타난다.
[창39:2-5]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자라온 환경과는 완전히 달라진 보디발 집에서의 생활은 가히 절망적이라고 할 수 있다. 부유했고 모든 것을 누리는 입장에 있던 요셉에게 ‘노예’라는 신분은 좌절을 느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 상황에서 그가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요셉은 자신의 입술을 지켰고 생각을 지켰으며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했다.
우리는 얼마든지 우리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며 자신의 억울함을 해명하기 위해 장황한 말들을 할 수 있다. 또한 그렇게 해야만 오해가 풀리고 상황들이 정돈될 때가 있다. 그러나 요셉이 처한 상황은 그런 것들이 전혀 허락되지 않았다. 단지 요셉이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고 인내하며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구하는 것 뿐이었다.
그렇게 인내하며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기대하던 요셉에게 더 좋은 일이 일어났는가? 정 반대로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가혹한 시련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정 총무로 열심히 일하던 요셉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게 된 것이다.
마치 인생에서 꿈과 소망이 완전히 사라져버리고 가장 절망적인 나락으로 떨어진 듯한 상황이 되었다. 만일 우리 자신이 젊은 나이에 희망이란 빛이 전혀 보이지 않는 컴컴한 지하 감옥에 억울하게 갇히게 된다면 어떻게 할까?놀랍게도 요셉의 태도와 삶은 보디발의 집에 팔려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한결같았다.
[창39:21-23]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요셉은 환경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 아버지의 집이나 보디발의 집, 지하 감옥은 단지 눈에 보이는 환경에 불과했다. 지하 감옥은 인생의 종착점이 아니라 단지 지나가는 과정이었다.
그의 인생 가운데는 오직 하나님만이 자리하고 계셨다. 그렇지 않았다면 요셉은 ‘하나님을 잘 믿고 섬기며 성실하게 살아온 나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하며 불평했을 것이다.
감옥에서도 열심히 산 요셉에게 또 한번의 좋은 기회가 온다. 감옥에서 만난 술 관원장이 자신이 풀이한 꿈대로 복직이 되어 나가게 된 것이다. 그는 술 관원장에게 자신을 기억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그러나 술 관원장은 2년이 지나도록 요셉을 까마득히 잊어 버렸다.
사람도 의지할 대상이 되지 못했다. 자신을 건져내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임을 요셉은 다시 깨닫게 된다. 2년이 지난 후 드디어 하나님의 소망의 빛이 요셉의 삶을 관통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주신 꿈을 풀이하기 위해 요셉을 감옥에서 끌어올리신 것이다. 그리고 요셉은 애굽을 치리하는 총리의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13여년의 시간동안 요셉은 절망과 죽음의 풀무불을 거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듬어지게 되었다. 그는 총리에 올랐으나 모든 나라와 민족들을 긍휼히 여기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고, 자신의 형제와 자신을 음해했던 자들을 용서하는 성숙한 사람이 되었다[창50:21].
그는 사람의 도움을 의지하는 자가 아닌 어떤 환경에서도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자신의 자존심, 명예가 땅에 떨어지는 순간에도 변명하거나 사람, 환경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만 신원하고 입술을 지켰다. 이것이 바로 요셉이 성공하고 승리한 비결이다.
[창50:19-20]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요셉의 이야기는 힘든 시험과 고난을 거치고 있는 모든 크리스천들에게 큰 힘이 된다. 우리는 창세기 후반부에 나오는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요셉의 생애를 보면서 의아할 정도로 궁금해지는 것은 위기의 순간을 대처하는 요셉의 태도가 어쩌면 그리도 의연한가 하는 것이다. 기록된 말씀을 보면 그는 결코 원망이나 불평하는 말,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이것은 그의 삶의 태도와 열매에서도 잘 보여지고, 사람들과 맺는 관계를 통해서도 잘 나타난다.
[창39:2-5]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자라온 환경과는 완전히 달라진 보디발 집에서의 생활은 가히 절망적이라고 할 수 있다. 부유했고 모든 것을 누리는 입장에 있던 요셉에게 ‘노예’라는 신분은 좌절을 느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 상황에서 그가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요셉은 자신의 입술을 지켰고 생각을 지켰으며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했다.
우리는 얼마든지 우리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며 자신의 억울함을 해명하기 위해 장황한 말들을 할 수 있다. 또한 그렇게 해야만 오해가 풀리고 상황들이 정돈될 때가 있다. 그러나 요셉이 처한 상황은 그런 것들이 전혀 허락되지 않았다. 단지 요셉이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고 인내하며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구하는 것 뿐이었다.
그렇게 인내하며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기대하던 요셉에게 더 좋은 일이 일어났는가? 정 반대로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가혹한 시련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정 총무로 열심히 일하던 요셉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게 된 것이다.
마치 인생에서 꿈과 소망이 완전히 사라져버리고 가장 절망적인 나락으로 떨어진 듯한 상황이 되었다. 만일 우리 자신이 젊은 나이에 희망이란 빛이 전혀 보이지 않는 컴컴한 지하 감옥에 억울하게 갇히게 된다면 어떻게 할까?놀랍게도 요셉의 태도와 삶은 보디발의 집에 팔려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한결같았다.
[창39:21-23]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요셉은 환경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 아버지의 집이나 보디발의 집, 지하 감옥은 단지 눈에 보이는 환경에 불과했다. 지하 감옥은 인생의 종착점이 아니라 단지 지나가는 과정이었다.
그의 인생 가운데는 오직 하나님만이 자리하고 계셨다. 그렇지 않았다면 요셉은 ‘하나님을 잘 믿고 섬기며 성실하게 살아온 나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하며 불평했을 것이다.
감옥에서도 열심히 산 요셉에게 또 한번의 좋은 기회가 온다. 감옥에서 만난 술 관원장이 자신이 풀이한 꿈대로 복직이 되어 나가게 된 것이다. 그는 술 관원장에게 자신을 기억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그러나 술 관원장은 2년이 지나도록 요셉을 까마득히 잊어 버렸다.
사람도 의지할 대상이 되지 못했다. 자신을 건져내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임을 요셉은 다시 깨닫게 된다. 2년이 지난 후 드디어 하나님의 소망의 빛이 요셉의 삶을 관통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주신 꿈을 풀이하기 위해 요셉을 감옥에서 끌어올리신 것이다. 그리고 요셉은 애굽을 치리하는 총리의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13여년의 시간동안 요셉은 절망과 죽음의 풀무불을 거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듬어지게 되었다. 그는 총리에 올랐으나 모든 나라와 민족들을 긍휼히 여기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고, 자신의 형제와 자신을 음해했던 자들을 용서하는 성숙한 사람이 되었다[창50:21].
그는 사람의 도움을 의지하는 자가 아닌 어떤 환경에서도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자신의 자존심, 명예가 땅에 떨어지는 순간에도 변명하거나 사람, 환경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만 신원하고 입술을 지켰다. 이것이 바로 요셉이 성공하고 승리한 비결이다.
요셉
2005-10-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