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마녀사냥의 카톨릭적 유사성
영국에서의 일반침례교인의 능지처침, 개혁파에 의한 재세례파에 대한 고문과 화형
* 칼빈의 마녀사냥의 카톨릭적 특징과 평가알미니안 지도자를 목잘라 죽인 칼빈주의자들
(1) 칼빈의 마녀사냥의 카톨릭적 유사성
폴 카루스는 마녀사냥에 대한 진상을 공개하며 마녀사냥이야말로 '기독교는 둘로 나뉘어져, 로마 교황에게 여전히 충성을 바치는 보수파와, 교회의 건통적 권위에 반기를 들고 다양한 생활양식에서 개혁을 요구하는 진보적인 프로테스탄트 신교로 구분되었다.
이러한 불안의 시대란 늘 풍자와 냉소를 좋아하는 법이다. 그렇기에 악마는 자연히 신교와 구교 양쪽의 신학논쟁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Paul Carus.op.cit.p.375)에서 신구교 양교, 특히 신교 가운데서도 칼빈의 마녀사냥이 어우러져 왔을을 말해 주고 있다.
특히, ' 교도들중에서 칼빈주의자들은 종교적 열정에 있어서는 로마 카톨릭 종교 재판관들과 가장 가깝다.'(Ibid p.442)는 것이 그것을 확인해 주고 있다.
(2) 마녀사냥의 결과와 평가
마녀사냥이 무작위로 자행되었다는 것은 흔한 경우이다.'셀 수 없는 많은 민간인들과 가난한 사람들은 대체로 무작위적으로, 그런가 하며 부자들은 신중하게, 어떤 식으로든 매우 치욕적스런 미신의 희생양으로 전락되었다.' (Ibid p.344)고 하여 이를 다시금 확인해 주고 있다.
'기독교가 마술의 종교로 이해되는 동안, 그 어떤 것도 마녀 화형에 대한 인간의 광기를 멈출 수 없었다. 많은 무고한 희생자들에게 덤벼들던 고문과 형벌에 대한 공포도, 혹은 때때로 판사들이 느꼈던 양심의 가책도, 그리고 기독교의 자비와 사랑도 그 광기에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Ibid p.340)고 하였다.
그리고 기독교의 마녀사냥에 대하여 평가하기를 '이것을 야만적이거나 짐승같은 일이라고 말하는 것은 성에 차지 않는다. 이는 다분히 악마적인 일이다. 이 같은 일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해질수 있었다니, 그것도 기독교 신앙을 위해서, 그리고 기독교 교회의 최고 권위자들의 명령으로 말이다.'(Paul Carus.op.cit.p.365)
이것은 기독교 지도자들에 의해 주도된 마녀나 인간사냥이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으며 칼빈주의 역시 성직자들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4.칼빈주의자들의 타교단의 기독교인들에 대한 살상의 실상들
1. 알미니안 주의 자들에 대한 칼빈주의자들의 기만적인 살상
1) 칼빈주의자들이 알미니안주의에 승리했다며 자랑하는 돌트회의
(1) 칼빈주의자들이 자랑하는 기만적인 돌트회의
칼빈주의자들이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역사상의 총회 가운데 대표적인 하나가 다름아닌 돌트회의이다. 1618년 11월 3일 로텔담의 남쪽에 위치한 도르트레흐트에서 개최된 본 회의는 1619년 5월 9일가지 계속된 사실상의 칼빈주의 자들의 회의였다.
이 회의는 칼빈주의자들에 의한, 칼빈주의를 위한 회의로써 칼빈주의를 기독교정통으로 세우기 위해 모인 회의였다. 칼빈주의자들이 이 역사책을 펼쳐 놓을 때마나 이 회의를 반드시 언급하는데 이는 이 회의가 칼빈교리의 승리를 가져다 준 역사적인 회의였기 때문이다.
이렇듯 돌트회의는 칼빈주의에 근거한 교리적 완성과 동시에 돌트신경(<돌트신경> : 돌트회의에서 채택된 칼빈주의 신앙의 중요 신앙고백들 즉 훼스트민스터 신앙 고백과 칼빈주의 5대교리에 대한 확인)을 채택함으로써 칼빈주의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회의로 알려져 있다.
돌트회의가 지니는 가장 큰 의의는 알미니우스가 나타나 칼빈주의 교리와 사상에 대하여 강력한 문제제기와 함께 그의 사상이 번져 나가자 돌트회의는 이를 차단하고 제압하기 위한 회의였다. 이에따라 돌트회의는 칼빈주의 자들의 일방적인 진행으로 칼빈주의를 결정하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는데 우리는 그 회의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2) 칼빈주의자들이 벌인 돌트회의의 실상과 살상
돌트회의는 어떻게 진행되었나? 우선 칼빈주의 자들은 자신들의 유일성을 확보하고,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신들의 교리에 항의하는 알미니안 주의자들 일명 '항의자들을 쇠사슬에 묶어 그 회의장까지 끌고왔다.'(
이와같이 쇠사슬에 묶어 사람들을 끌고 와 회의를 시작한 것은 돌트회의가 처음부터 어떻게 진행되었는가를 능히 짐작케 해준다. 그래서 역사는 이를 반증해 주기를 '알마니우스 파는 평등하게 초청되지도 않았다. 그들은 피고로 소환된 것이다.'(<개신교 역사와 신학>박건택. 개혁주의 신행협회. 1998.2.20.p.195)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을 회의 석상에 참석시키지도 않았다. '그들(칼빈주의자들)은 자신들이 끌고 온 알미니우스 주의자들을 다른 방에 감금하고 일체 토의 석상에 나오지 못하도록 봉쇄하고 자신들만의 회의를 끝까지 진행시켰던 것이다. 이러한 회의의 결과 그들은 자신들만의 칼빈주의 교리와 사상이야말로 유일한 기독교 정통사상이라고 선언하고 일방적인 회의 끝에 알미니안 파의 교리들을 정죄하였다.
그래서 나온 것이 돌트신경이고 그 내용은 칼빈주의 사상을 '만장일치로 확증하였다'고 선언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칼빈주의자 정성구 교수는 선전하기를 '돌트대회는 철저한 칼빈주의 자들의 압도적 승리와 알미니안주의 자들의 패배로 끝나고 말았다'(정성구 op.cit.p.416)고 하였다.
칼빈주의자들의 승리는 누가 보아도 당연히 이길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역사에서 알미니안에 이긴 회의로 소개되고 있는 것이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가면적인 교훈에 지나지 않는다.
(3) 알미니안 지도자를 목잘라 죽인 칼빈주의자들
칼빈주의자들이 주도한 돌트회의는 칼빈주의 사상의 승리를 선언하고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를 항의하는 항의자 자도자인 휴고 그로티우스를 종신토록 투옥하였고, 알미니우스 주의자 반 휄트를 목잘라 죽이는 참수의 만행을 저질렀다'(Dr.dale M Yocum.op.cit.참조)는 사실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칼빈주의 사상에 대한 결정도 기만이지만 알미니안 지도자들을 목잘라 살해한 것은 얼마나 기만적이고 광신적인 그들이었는가를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 실상이 이러한데도, 칼빈주의자 정성구 교수는 주장하기를 '우리가 돌트 총회를 생각할 때 보겔만 의장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보겔만은 평화주의자였다.' (정성구 op.cit.p.421)라고 기만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그와같은 평화주의자가 상대방 교리주의 자들을 쇠사슬에 묶어 그 회의장까지 끌고 오며, 또한 상대방을 목잘라 참수하여 죽이는가? 이것은 평화주의 자가 아니라 악마주의 자이다. 정성구 교수는 역사를 두 번 죽이고 기만하고 있는 것이다. 정성구 교수는 엄연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4) 다시금 확인되는 칼빈주의 교리자들의 습성
칼빈주의 정통주의 자들의 자신들의 교리나 생각에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자신들에게 도전하는 자들에 대한 처리방식이었다. 칼빈부터 그러했으며 그의 사상을 이어받은 칼빈주의자들 또한 같은 맥락에서 동일한 행위를 자행하였다.
'교회는 교회에 대해서 의심을 갖거나 도전하는 자를 이단으로 몰아 붙여 불에 태워 죽였습니다.'(<인간의 역사> 조우화.동녘 125)라는 사실들이 칼빈에 의해 주도되고 개신교에서도 일반회 되어졌었다는 것을 확인해 주는 것이다.
자신들에 대하여 저항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여지없이 쇠사슬로 묶어 끌고 오고, 끌고 가고, 목을 자르고, 불을 질러 자신들에게 질문해 오는 사람들에 대하여 대답해 주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의 방식이었고 인간의 존엄성을 귀히 여기는 교파의 회의였다는 말인가?
형제를 돌로 쳐 죽인 가인의 축제였으며 보겔만 회장이 평화주의자였다는 칼빈주의자 정성구 교수의 주장은 역사를 기만하는 위장된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돌트 회의가 칼빈주의 자들에게는 그렇게 자랑스러운 회의이지만 사실은 형제의 피로 물들인 위장된 가인적 정통성을 이은 종교의 역사의 한 과정의 의미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2) 칼빈주의자들의 재세례파를 죽인 역사적 살상의 진실
칼빈주의 자들이 기독교내 타교단과 관련하여 살생을 한 곳이 다름아닌 재침례교도들에 대한 살상이 그것이다.
(1) 스위스에서의 재침례교도들에 이한 살상의 역사
'스위스에서 17세기초까지 재침례교도들에 대하여 계속해서 처형을 하였다.'
(
칼빈
2005-03-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