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마음, 아들의 마음 -제1편-
I.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글 : 예영수 박사 / 카리스월드 발행인“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말4:5-6]
목회하는 아버지들은 목회하는 아들들에게 영적 유산의 옷을 입혀 주어야 하고, 아들들은 아버지들을 공경하고 섬겨야 한다. 아버지들은 순종과 섬김에 대한 칭찬, 명예, 지지의 옷을 지어야 한다.
엘리야의 가장 위대한 사역은 그가 행한 기적들만이 아니라 그보다는 믿음의 아들 엘리사에게 축복과 능력을 전수한 것이다. 또한 엘리사는 엘리야에 대한 섬김을 다하는 아들의 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시작하는 말 : 예언, 축복, 저주
위의 구절은 구약성경의 제일 마지막 말씀이다. 2,000년 동안의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가 이 문장으로 끝나면서 왕과 선지자의 모든 시대가 이 두 구절에 집중되어 있다.
이 두 구절에는 (1)주님의 날이 이르기 전에 엘리야가 올 것이란 예언의 말씀과, (2)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회복될 것이란 축복의 말씀과, (3)마음을 돌이키지 않으면 그 땅을 저주로 칠 것이란 저주의 협박이 동시에 포함되어 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 시대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다.
I.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1) 엘리야는 세례요한을 지칭한다
여기서 언급한 “선지자 엘리야”는 아합왕 시대에 살던 “엘리야”를 보내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 즉 “세례요한”을 지칭하고 있다. 예수도 “세례요한”을 가리켜 “엘리야”라고 하셨다(마17:11,12).
구약시대가 지나간 후 400년의 침묵을 깨고 세례요한이 하게 될 예수를 위한 교량 역할에 대한 예언을 말하고 있다.
세례요한은 구약의 아버지들의 축복과 약속이 예수의 하나님 나라 전파에로 연결되는 교량 역할을 했으며, 자기 다음에 오셔서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분을 위해 길을 예비했다.
(2) 왜 엘리야라야만 하느냐?
구약시대가 지나간 후 400년의 침묵을 깨고 신약시대의 세례요한이 하게 될 역할을 두고 왜 엘리야를 말하느냐? 왜 하나님은 예수의 오심을 준비하기 위하여 엘리야의 영과 권능을 보내셨나? 왜 엘리야라야만 하느냐? “아버지(엘리야)의 마음을 자녀(엘리사)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엘리사)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엘리야)에게로 돌이키게” 하는데 왜 아버지의 마음이 엘리야의 마음이라야 하며, 아들의 마음이 엘리사의 마음이라야만 하느냐? 왜 모세, 여호수아, 이사야, 예레미아, 요셉, 다윗, 솔로몬은 되지 않느냐?
그 이유는 성경에서 엘리야만이 자신의 성령의 역사의 갑절을 목회사역의 아들 엘리사에게 전달했기 때문이다.
세례요한이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눅1:17)라는 역할을 감당하는 것도 자기 다음 세대가 훨씬 더 위대하길 원하는 아버지의 마음으로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3:30)”의 마음 때문이다.
‘아버지들’이란 하나님 나라 선교를 위한 영적인(목회사역의) 아버지들을 말하고, ‘자녀들’이란 목회사역 하는 영적인 아버지들의 목회사역 하는 영적인 아들들과 딸들을 말한다.
(3) 아버지 엘리야의 마음은 갑절을 주고싶은 마음이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가 자기 백성 가운데서 다음 세대로 갑절이나 충만하기를 원하신다. 이 갑절의 축복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은, 엘리야처럼, 아버지들의 마음이 먼저 아들들에게 돌이켜져야 한다. 그리고서 엘리사처럼 아들들이 아버지들에게 돌이킬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그 땅을 저주로 칠 것이다. 아버지보다 아들이 갑절이나 충만하게 된 것은 엘리야와 엘리사가 경험한 기적의 은사에서도 나타났다. 엘리야는 14번의 기적을 경험하나, 엘리사는 엘리야 보다 갑절이 많은 28번의 기적을 경험했다.
하나님은 자신의 교회가 갑절의 권능으로 목회가 이어지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이 목회의 영적 유산을 다음 세대에 갑절이나 전달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증가가 아버지들에게서 아들들로 갑절로 이어지기를 원하신다.
아버지들의 마음이란 영적 능력과 축복의 유산이 아들들에게 갑절이나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엘리야의 마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내 자신의 목회에만 집착하면, 자기 목회를 위해 하는 어떤 사역도 그 자체만으로 소멸되어 버릴 것이다. 아버지들은 자신들이 꿈꾸지 못한 것보다 위대한 아들들의 사역에 동참하는 기쁨을 누려야 한다.
(4)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기름부어 선지자로 세웠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왕상19:16)고 하셨다. 엘리야가 겉옷을 밭가는 농촌 소년 엘리사 위에 던짐으로써 엘리사를 영적 아들로 불러 세웠다.
훗날 엘리야는 엘리사가 끝까지 따라와서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라고 요청할 때,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자기 몸에 입고 있던 겉옷을 던져줌으로써 갑절의 역사가 나타나게 했다. 엘리사는 엘리야가 던져 준 겉옷을 통해 갑절의 영적 유산을 받게 되었다.
엘리사가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된 것은 엘리야의 아버지의 마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 믿음의 아버지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의 아들 엘리사를 기름 부어 선지자로 세운 것이다.
엘리야의 가장 위대한 사역은 그가 행한 기적들만이 아니라 그 보다는 믿음의 아들 엘리사에게 축복과 능력을 전수한 것이다. 엘리사는 나환자를 치유하고, 마른 땅에 물을 나게 하고, 빵 몇 조각으로 100명을 먹이고, 군대가 그를 이기지 못하게 하는 기적을 일으켰다.
그러나 엘리야가 모든 것을 그의 사역의 첫 열매인 엘리사에게 주지 않았더라면 엘리사는 살다가 쟁기 뒤에서 농부로 죽었을 것이다.
(5) 아버지의 옷은 영적 유산의 상징이다(출29:29-30)
엘리야와 엘리사는 자연 질서 속의 부자 관계는 아니다. 그들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영적 연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엘리사를 선지자가 되게 한 것은 영적 아버지 엘리야의 겉옷이었다.
성경에서 “옷”은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 주는 목회사역을 위한 영적 유산의 상징이다. 예를 들어, 모세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회막문으로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 의복을 입혔다.
아론의 머리 위에만 기름을 부어 그를 거룩하게 구별했으나 그의 아들들에게는 기름을 붓지 아니하였다. 아들들이 기름부음을 받은 것은 아버지의 옷에 젖은 기름을 접목 받음으로 이루어졌다(출29:4-9). 기름부음이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 전수(impartation) 되는 것은 기름부음이 스며져 있는 옷을 통해서였다.
성경은 아론에게 행한 기름부음을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133:2-3)라고 기술하고 있다.
기름부음의 방향은 항상 아래로 내려간다. 가장 강렬한 기름부음은 아론의 머리 위가 아니고 아론의 옷깃이다. 가장 강렬한 물의 흐름은 헐몬산 꼭대기의 이슬이 아니고, 산밑에 푹푹 솟아나는 127마일의 요단강이다. 그것이 갈릴리 바다로 이어진다. “요단”이란 “하강하는 자(the descender)”란 뜻이이다.
(6) 바울은 믿음의 아버지요 디모데는 믿음의 아들이었다.
구약성경의 엘리야와 엘리사의 관계처럼 신약성경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바울과 디모데의 관계이다.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로 하여금 할례를 받게 했다(행16:1-3). 바울은 할례에 대한 강한 반대 의견을 말했는데도 디모데에게 할례를 받게 한 것은 모순인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디모데의 할례는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니고 목회하는 아버지가 복음의 아들에게 행한 행동이었다. 하나님으로 인해 인정받기 위한 것이 아니고, 사람들에게 수용되기 위해 목회사역의 아버지가 목회사역의 아들에게 행한 사려 깊은 행동이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한 것은 영원한 언약의 영적 상처를 낸 의미도 있다. 이 할례는 목회사역 하는 아들로부터 육적인 것을 도려내는 영적 수술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네게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네게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신30:6)란 말씀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바울은 디모데를 “사랑하는 아들
2004-1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