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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부흥과 사단이 주는 거짓 부흥

부흥과 갱신을 외치는 한국 교회, 무엇이 예수님 안에서의 참된 부흥인가?
교회 생태계를 파괴하는 교인 수평 이동을 통한 교회 부흥은 진정한 부흥이 아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피흘려 사신 교회들과 목회자, 성도 모두에게 큰 상처를 준다.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부흥은 어떤 것일까?

복음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 혹은 그러한 종교가 가장 신뢰할 수 있고 믿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람이 많이 모이고 대중적이라고 해서 반드시 ‘참’이고 소수라고 해서 반드시 잘못되었거나 거짓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노아의 때 노아와 그 가족들 외에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비웃었다. 노아와 그 가족들은 세상 사람에 비해 너무나 소수였기 때문이다.

롯의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도 사회 지도층과 권력층은 예수님을 환영하지 않았다.

또한 카톨릭, 여호와 증인, 통일교 등은 규모도 크고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의 성장을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부흥이라 말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전도의 의미를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전도란 무엇인가? 전도란 단순히 사람들을 교회로 이끄는 것이 아니다. 전도는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불신자를 교회로 인도하여 예수님을 영접시키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배하는 예배자가 되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교회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예배 드리도록 이끌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초점이 교회 자체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께 맞추어 지도록 섬겨야 한다.

그런데 이 시대의 한국 교회는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부흥이 멈추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교회의 부흥과 갱신을 외친다. 그러나 이를 빌미로 자기 교회, 자기 자신의 바벨탑을 쌓는 교회들이 적지 않다.

일부 대형교회는 불신자 전도 보다는 주위 교회를 파괴시키는 ‘교인 수평 이동’을 획책한다. 그들이 외치는 ‘연합’ 혹은 ‘기도 운동’의 슬로건은 주변의 성도들을 끌어들여 자신의 교회를 비대하게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셨다면 그것은 한국의 모든 교회가 다 같이 부흥하도록 섬기라고 주시는 것이다. 다른 교회를 파괴하면서 주위의 모든 교회들을 잠식해 버리는 불가사리 같은 ‘생태계 파괴형 바벨탑 쌓기 교회’가 되어서는 안된다.

특히 특별 새벽기도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기도회를 요란하게 개최했던 교회들이 있었다. 명분은 그럴듯 했지만, 결론은 타 교회 성도를 도둑질 하여 자기 몸만 비대하게 했다. 그러다보니 자신이 섬기는 교회에서 새벽 기도를 하기보다 일부러 그 교회에 찾아가서 새벽 기도를 한다.

그러나 왜 이렇게 요란스럽게 다른 교회 성도들까지 끌어들여 새벽 기도를 해야 하는가? 그 교회와 재정적 먹이사슬 관계에 얽힌 일부 언론들은 연일 모 교회의 ‘새벽 기도회’를 보도하며 몇 명이 모였고, 어떤 기도를 했는지 등의 기사를 계속해서 내보냈다.

하지만 이런 것이 진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이며 부흥인가? 그 교회에서 새벽 기도회를 할 때 주위 교회들은 가슴 아픈 경험을 해야 했다.

철 따라 날아다니는 새처럼, 일부 교회관이 약한 성도들은 본인이 섬기는 교회를 지키지 못하고 다른 교회로 옮기는 일이 벌어졌다. 이것은 사단이 주는 거짓 부흥이 아닐까?

그러나 교회는 다방이나 음식점과 같이 이 곳 저 곳 떠돌아 다니며 자기 입맛대로 고르는 곳이 아니다.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교회는 자기 눈물이 있고, 헌신이 있으며, 좋을 때나 어려울 때나 한결같이 하나님이 주신 교회의 비전을 함께하며 죽도록 충성하며 섬기는 하나님의 집이다.

다니엘은 포로로 끌려갔을 때도 그곳에서 믿음을 지키며 기도를 하였고, 기도를 할 때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을 열고 하루 세번 기도를 했다. 가까운 우상 숭배 장소에 가서 기도를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나라와 하나님의 성전을 향하여 간절하게 기도를 한 것이다.

물론 새벽 기도를 하는 것이 뭐가 잘못되었느냐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지 자기 바벨탑을 위한 것인지 우리는 분별해야 한다. 중들도 새벽을 깨우며 날마다 기도를 한다.

이단들도 새벽을 깨우며 국가와 민족을 위해 기도를 한다. 나라를 위해, 연합과 일치를 위해 기도를 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모든 교회가 같이 부흥하고 유익이 되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

한국 교회가 힘든 시기를 맞이하게 된 것은 불신자 전도를 통한 활력이 넘치는 부흥과 성장이 아니라 교회간의 수평 이동을 통한 교인 끌어모으기를 일삼고, 생명력 있는 유정란 성도가 아닌 무정란 교인을 만들어 자녀된 권세를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데 원인이 있다.

지속적인 전도를 통해 영혼구원이 있는 교회가 생명 있는 교회이다. 그리고 교회는 맡겨진 영혼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로 잘 양육하고 섬겨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하나님은 우리가 어느 교회에 다녔고, 어느 팀에 소속되었는지는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우리가 행한대로 갚아 주신다고 성경을 통해 말씀하고 계신다[계22:12].

‘저는 ○○교회 다녀요’라고 특정 교회의 이름으로 자신을 대변하는 것은 열등 의식의 표현이며 ‘영적 허영심’의 또 다른 모습이다. 이는 하나님 앞에 진실한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하지 못하게 만든다.

성도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님 다음으로 자신이 속한 교회의 담임 목사이다. 아무리 큰 건물을 가진 목사이고 훌륭한 목사일지라도 다른 교회 성도를 위해 이름을 부르며 매일 눈물로 기도 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교회간 수평이동을 자행하는 소수 대형 교회들은 하나님 안에서의 진정한 부흥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보고, 한 영혼을 위해 눈물과 헌신으로 섬기는 한국 교회 모든 목회자와 사역자들의 마음을 기도하는 가운데 깊이 헤아리며 반성하기 바란다.

2004-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