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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 예배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 하시니이다” [시22:3]
* 글 : 정바울 박사
한국교회기독교영성총연합회(UCSC)
대표회장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기뻐하시는 찬양은 어떤 것일까?

나라가 다르고 피부색이 다르며, 언어가 다른 열방 족속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은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12:1]

하나님은 어떠한 찬양을 원하시는가?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계 14:7]고 말씀하신다. 주님을 경배하는 것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들이 해야 할 우선적 의무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가 바로 우리의 몸을 드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이것이 하나님께 드릴 영적 예배라고 하신다. 인터넷으로 드리는 예배, 마음만 교회에 가 있는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아니다.
우리의 몸을 드리는 예배가 진정한 영적 예배이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 앞에 첫째 가는 예물이 된다.

우리는 왜 하나님을 찬양하는가? 하나님의 행하신 위대한 일들을 높이고 송축하기 위해서이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높이고,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높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찬송을 드리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가장 첫째 순위에 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주님을 믿는 우리 각 지체인 교회는 교회의 머리가 되신 예수님을 높이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이는 모든 믿는 자들의 첫째 가는 책임인 것이다.

찬양의 제사는 우리 자신을 위한 것도 아니고 우리 자신이 중심이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찬양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는 그분이 임재하시는 것을 발견한다.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 하시니이다”[시 22:3]

우리의 찬양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하게 되고, 그 자리가 하나님의 보좌가 되고, 하나님이 다스리는 자리가 되는 것이다.

찬양은 주님을 사랑하는 우리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는 더욱 친밀해진다.

찬양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열리게 되고, 우리는 그 가운데 하나님과 함께 거하며 사랑의 교제를 나누게 되는 것이다.

음악 자체는 찬양이 아니다. 악기의 연주가 찬양이 아니며, 노래를 하는 것 자체는 찬양이 아니다.

찬양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의 심령이 그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배하며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때 진정한 희생 제사가 될 수 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 중심을 감찰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문화적 차이와 교회 음악

예수님께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셨는데, 특별히 이스라엘이라는 작은 나라의 유대인으로 오셨다. 예수님의 옷과 신발, 말투, 삶의 모습은 그들이 살던 동시대 어느 사람들과도 다르지 않았고, 그들과 같은 문화의 옷입고 계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나지막한 샌들 하나를 신고 이스라엘과 주변의 곳곳을 다니시며 복음을 전하셨다. 예수님은 자동차를 타지 않으셨고, 양복을 입지 않으셨다.

학교를 다니며 교육을 받지도 않으셨고, 더욱이 신학을 하신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최고의 복음전도자이셨다.

죽기까지 아버지 하나님께 복종하며,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목숨까지도 아끼지 아니하신 사랑의 주님이셨다.

전세계 많은 나라들은 그 나라 고유의 문화적 특성과 정서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단지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만 녹아져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 사회, 경제, 교육, 신앙, 모든 삶의 전반에 걸쳐서 내포되어 있다.

불과 200년밖에 되지 않는 나라인 미국도 자기 나름대로의 문화를 가지고 있고, 경제 대국답게 자신들의 문화를 엄청난 여파로 전세계에 수출하고 있다. 우리 나라 역시 너무나 많은 영향을 받았다. 물론 그것들 중에서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고, 부정적인 부분도 있다.

요즘 대중음악이나 CCM, 찬양과 경배곡들을 보면 그 장르가 너무나 다양하고 사용되는 악기, 연주법, 가사, 편곡, 발성, 그 모든 것들에 있어서 많은 시도들이 있음을 보게 된다. 과거 제대로 된 악기가 교회 안에 들어오기 전, 목사님들이 강대상의 책상을 두드리며 부르는 민요 같은 찬양곡들, 혹은 찬송가를 흥겹게 불렀던 기억들이 있다.

구역 모임을 가질 때도 특별한 악기가 없더라도, 박수를 치며 부르는 찬양곡들 속에는 우리 나름대로의 정서가 녹아져 있었다.

또한 최근에는 국악을 찬양에 접목시켜 다양한 시도를 갖는가 하면, 전통 춤과 창, 전통 악기들도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사용되기도 한다.

우리는 그 안에서 심한 거부감을 갖는가? 아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창법, 악기, 춤들이 나오면서 흥겹게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

우리 나라에도 전통 춤과 국악, 창, 전통 악기로 주 예수님을 찬양 경배하며 선교하고자 한국 국악 선교회가 결성되기도 했다. (참조 ; 한국국악선교회 - 국악찬양의 제작, 공연, 복음전파. http://www.ktmm.co.kr )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너무나 감사하여 덩실덩실 춤을 추고, 우리 나라에 찬송곡들이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을 때에는 아리랑이나 민요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가사를 붙여서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북과 장고, 꽹과리, 징 등의 악기들로 하나님을 찬양하기도 했다.

중국 연변에 있는 조선족 동포들은 불과 십여년 전까지만 해도 아리랑이나 민요, 우리 전통 곡들에 찬양 가사를 붙여 찬송을 하기도 했다.

아프리카의 경우 그곳 교회들에서 화려한 신디사이저와 드럼, 전자 기타로 하나님을 찬양하겠는가?

물론 그런 곳도 있지만 그곳 사람들은 전통 북 하나를 가지고도 최고의 찬양을 하나님께 드린다. 북 하나를 울려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뜨거움으로 온통 열기가 가득해 지며,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 속에 들어간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 추는 춤이 이라크 여자 포로를 집단 강간하며 성 폭행하는 일부 잘못된 미국 군인들과 8살 이라크 소녀를 정조준하여 사살하는 앵글로 색슨 군인의 전통을 복제하여 무조건 흉내내는 잘 다음어진 워십 댄스이겠는가?

아니다. 전통적으로 추어 왔던 춤들이 대부분이다. (http:// aztian.net/iraqi_women_reped.htm)

예전에는 세상과 짝하여 자기 자신들의 유희를 즐기기 위하여 춤을 추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전통 복장을 하고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춤을 추며 하나님을 경배한다.

그런 장면들을 보고 있으면 감동이 온다. 그들의 전통적인 춤이 신기하고 화려하기 때문인가? 아니다.

세상 사람의 눈에 어떻게 보이든 자기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네셔널 워십 인스티튜트(International Worship Institute)의 학장이자 찬양 사역자인 라마 보쉬만 (LaMar Boschman) 목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새 노래 [사 42:10], [시 40:3], [계 14:2∼3]’로 찬양을 하며, 각 나라와 족속들의 독특한 문화와 정서를 담아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권고한다.

십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주일 예배 시 가만히 앉아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나라는 대한민국 하나라고 세계 각국의 신학자들은 말하기도 했다.

하나님을 찬양할 때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성가대나 찬양단이 하는 찬양을 감상하고 듣고 구경하는데 그치는 경우가 있었다. 만왕의 왕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한쪽 손을 들기도 어려울 만큼,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 표현은 인색했었다.

과거에 어떤 교단에서는 교회 안에서 드럼을 치는 것을 이단이라고 정죄하며 마치 악마의 악기를 교회에 들이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 하나로만 하나님을 찬양해야 진정한 찬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수십, 수백명의 대규모의 성가대가 찬양을 해야만 진정한 찬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세월이 흘러, 성령님의 역사 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한국 교회에 찬양 예배, 열린 예배가 활성화되면서 서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경배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었다.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 사람은 바로 내 자신이 되어야 한다.

내가 내 몸과 목소리와 마음과 힘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거룩한 산 제사를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이다 [롬12:1∼2]. 남이 아니라 바로 내 자신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의 제물이 되어야 한다.

중남미의 파나마, 아르헨티나의 경우도 열정적으로 몸을 흔들며 소리를 높여 하나님께 요제(제물을 흔들어 바치던 구약의 제사 법)의 찬양의 제사를 드리며, 스페인의 경우는 플라맹고 춤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기도 한다.

브라질의 경우 열정적인 그들의 정서를 반영하듯, 하나님을 찬양할
정바울목사예배찬양

2004-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