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 에큐메니즘 & 혼합 영지주의 관상기도를 중심으로 모이는 세계의 종교들
한국 교회와 한국 사회의 공익을 위하여 이 글을 공표합니다.
관상 영성이란 고대의 신비적 훈련을 통해서 변화된 의식상태(침묵)를 유도하며 신비주의와 신비술에 뿌리를 두었지만 자주 기독교적 용어로 포장되는 신앙체계로서 관상영성의 전제는 범신론적이며, 만유내재신론적이다.
동양적 신비주의 사상과 카톨릭 혼합신비주의의 대가들은 토마스 키팅, 토마스 머튼, 헨리 나우웬(동성연애자), 노르위치의 줄리안, 십자가의 요한, 아빌라의 테레사가 있다. 헨리 나우웬은 그의 책에서 “토마스 머튼이 선불교, 수피즘, 도교, 힌두교(우파니샤드)의 영성에 큰 영향을 받았으며, 동양 명상의 여러 형태들이 크리스천들 속으로 섞여 들어왔다”고 적고 있다.
뉴에이지적 관상영성이 교회로 들어오게 된 것은 70년대 세 명의 수사(修士)들 (토마스 키팅, 윌리엄 매닝어, 배절 페닝턴)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들은 종교 통합적인 카톨릭 신학자들, 일주일간 불교 명상 피정을 제공한 동양 선의 대가인 조슈 사사키, 초월 명상을 가르친 트라피스트 수사였던 폴 메리첼 등을 수도원으로 초청했다. 카톨릭 수사들과 동양명상가들의 대화를 통해 카톨릭 관상기도는 평신도를 포함한 다양한 계층의 신자들이 손쉽게 훈련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조셉 샌드만 (어메리카 매거진 2000년 9월)
특히 관상기도는 신사도들에 의해서도 매우 증진되고 있다.
예를 들어, 타드 벤트리의 이전 홈페이지에는 “관상기도를 통해서 삼층천을 보는 방법” (Guided Visuali-zations of the THIRD HEAVEN) 에 대한 관상법 강의가 소개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이 관상기도 중에 영계에서 선다 싱을 만났다고 적었으며, 선다 싱은 요즘 종교분야 베스트셀러의 주인공인 스웨덴보리를 영계에서 만났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들이 영계에서 만난 자들은 모두 친숙령들(familiar spirits)이다.
성경은 죽은자와의 교통(Necro-mancy)을 인정하지 않는다.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가운데에 용납하지 말라”(신명기18:11)
관상기도는 신복음주의권에서도 매우 유행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레노바레의 리차드 포스터와 더 메시지 성경(The Message)을 쓴 유진 피터슨을 꼽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일부 목회자들도 교회 안에 관상 기도를 소개하기도 한다.
“관상이란 깊은 사고로 생각이 머무는 자리, 궁극적으로는 생각 자체를 뛰어넘어 생각 자체도 쉼을 누리는 자리를 뜻합니다.” - 이동원목사 목회칼럼
“명상(冥想)이란 정신을 하나로 집중하여 모든 생각, 모든 관념을 비워 빈마음을 이루어내는 작업이다. 불교에서는 명상의 목표를 우주와 진리와의 합일을 목표로 삼는다면 기독교에서는 하나님과의 합일을 목표로 삼는다. 글자 그대로 영적 체험이요, 신비체험이다.” - 김진홍목사(종교다원주의자)의 아침묵상
한국 교회 안에 잘 알려진 리차드 포스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고(思考) 없는 명상을 통해 자신 내부의 깊은 곳의 “중심”을 향하고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실제로 만나고” 그리고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영적 훈련과 성장/Celebration of Discipline P. 26)
심지어 그는 명상 수행자들은 “당신이 아버지를 보고 아버지께서 당신을 보는, 아버지와의 깊은 내면의 교제 속으로”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P. 27)
포스터는 시각화(visualization) 훈련을 장려하는데, 몸을 떠난 개인이 “외계 깊숙이 들어가”, “영원한 창조주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서, 거기서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주의 깊게 경청하여 지시를 받는다고 주장한다.(영적 훈련과 성장, 1978년본 P. 27-28)
리차드 포스터는 자신이 본 ‘환상’을 아래와 같이 기술하는 급진적 에큐메니스트이다.
“나는 켄터키 산촌에서 온 카톨릭 수도사와 로스엔젤레스 거리로부터 온 침례교 전도사가 함께 나란히 서서 찬양(?)의 제사를 드리는 것을 본다. 나는 사람들을 본다.” (생명수의 물줄기/Streams of Living Water, 1998, P. 274)
또한 토마스 키팅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관상기도는, 사고와 언어와 감정을 초월하는 궁극적 신비인 신에게 우리의 마음과 심장과 우리의 온 존재를 여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동의할 때, 신과의 합일로 이끌어 주는 내적 정화 과정이다. (‘신적 요법으로서의 향심기도’ : 트리니티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키팅은 오컬트적인 쿤달리니 요가를 추천하기까지 한다.
또한 그는 ‘비우기’를 논하느라고 불교의 주 경전인 ‘금강경’(Diamond Sutra)을 인용하면서, 독자들에게 공중부양과 같은 심령술들이 관상기도에서 비롯될 지도 모르지만 그런 능력들은 케이크에 설탕을 입히는 것과 같다며, 우리는 설탕을 입힌 것만으로는 살아남을 수가 없을 것이지만, 만일 독자들이 심령술에 관심이 있으면 반드시 인가된 교사 아래서 수행하라고 다짐을 놓는다.
신비주의자들과 관상기도의 명상적 수행자들에 따르면, 관상가는 신비주의자가 접촉하는 것과 같은 실체와 접촉한다고 진술하며, 또한 관상가는 진리에 대한 순수하고 직접적인 비전을 받는 것으로 느낀다고 진술한다. 이 생각은 동양종교적 명상기법들을 통해 ‘생각 비우기’ 상태에서 좀 더 순수한 형태의 진리를 얻는다고 가르치는 동양종교의 믿음에서 발견된다.
성서의 가면을 쓴 관상기도를 권장하는 목사들과 거짓교회들은 흔히, 논리와 이성을 향한 ‘깔끔하게 포장된’ 복음주의적 기독교와 관상기도의 경험적 신비주의적 면모들 사이의 ‘딜레마’라는 허위 개념을 풍긴다.
이 생각은 현재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점점 더 일반화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거짓 딜레마임이 드러나고 있다.
성경 말씀 어디에도 기도가 기법 또는 생각을 넘어선 방법이라고 하지 않는다. 통째로 성경과 동떨어진 기도신학 창출이 특히 위험한 이유는, 바로 우리가 주관론과, 경험에 바탕을 둔 진리로 가득찬 영역-따라서 우리 스스로 속을 수 있는-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관상기도 교사들은 기도는 하나님께 귀 기울이는 것이고 하나님과 신적 연합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성경은 기도를 말(단어)들과 생각들로 제시한다.
관상기도는 우리에게 내적으로 집중하라고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밖으로 하나님께 집중하라고 훈계한다. 관상기도에 관한 한 평가서는 관상기도가 뉴에이지, 동양 종교적 기법들과 성경 밖 개념들의 혼합물이라는 것을 밝혀 준다.
관상기도는 틀린 명칭이다.
왜냐면 그것은 성경에서 발견되는 대로의 기도나 관상(명상, 묵상)도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래와 같은 7가지 관상기도 지침에 대해서 방심하거나 따라해서는 안 된다.
1) 기도 전 또는 도중에 어떤 특정 방법으로 호흡하도록 한다.
2) 어떤 자세나 몸의 위치를 유지하도록 한다.
3) 한 단어나 구를 반복하도록 하거나, 그것이 성경에서 나온 것일지라도, 또는 집중된 상태로 있기 위해 한 단어나 구를 사용하도록 한다.
4) 생각이나 사고를 넘어서도록 한다.
5) 하나님을 발견하거나 함께 하기 위해 안으로 돌아서도록 한다.
6) 진정으로 기도하기 위해 침묵 가운데 있도록 한다.
7) 관상기도가 진짜 기도라는 것을 믿도록 한다.
뉴에이지(New Age)에서 나온 신사도운동가들과 IHOP, 신복음주의로부터 나온 Emerging Church의 기도의 특징은 관상기도이다!
타드 벤트리, 마이크 비클, 밥 존스도 그들이 관상 기도가라는 점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는 점도 참조해야 한다.
만유가 신의 안에 속하며, 신은 만유에 내재하는 동시에 만유에서 초월하여 존재한다는 이론(All-in-God)은 우주적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고 뉴에이지적이며 신복음주의적 기독교인들의 일부는 주장한다. 쉽게 말하자면 길가의 돌맹이나 나무뿌리에도 신이 내재하고 있으며, 신은 그것을 포함하며 그것보다 크다(+α)는 사상이 바로 그것이다.
우주 만물 속에 들어 있다는 이 신은 바로 영지주의의 “신적 존재 (Divinity)”이며, 뉴에이지에서는 “우주 의식(Cosmic Consciousness)”이라고도 불린다. 영지주의에 의하면 만물은 신적 존재로부터 방출된 신성을 가지고 있다. 이 신성들은 분리될 수 없으며, 서로 연합해서 하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만물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다. 만물은 신의 일부분이며, 신은 만물 속에 있는 신성의 연합체를 포함한다. 다음은 만물 속에 들어있는 신을 믿는 신비주의자들의 말이다.
“그리스도는 있는 그대로의 만물 안에 존재한다.” - 나지안즈의 그레고리오
“모든 피조물 안에서 인간이 알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다.” - 빙겐의 힐데가르트
“보라! 나는 신이다. 보라! 나는 모든 것 안에 있다.” - 노르위치의 율리아나
“신성은 만물 안에 존재한다.” - 쿠사의 니콜라우스
“우주는 근본적으로 또 원초적으로 살아있는…그리스도다.” - 떼이야르 드 샤르뎅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스리시며 모든 곳에 계시고 모든 것 안에 있다.” - 릭 워렌이 인용한 성경 NCV (에베소서 4:6)
영지주의의 신, 즉 우주 만물에 내재하는 신이 20세기 과학을 타고 기독교 안으로 들어왔다. 이것이 바로 유신(有神)진화론이 말하는 “우주 그리스도”이다.
뉴에이지 크리스찬들은 만물 속에 내재하고 있는 신성을 “우주 그리스도”라고 부른다. 영지주의적 종말론적 신비주의 배교적 기독교 기도운동 특징 중의 하나가 관상기도이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을 그대로 믿는 순복음오순절 근본주의와 장로교 개혁주의 목사님들은 연합하여 관상기도를 경계해야 한다.
기독교를 뉴에이지화하고 있는 레너드 스위트는 이머징 운동 적극 지지
“양자영성(Quantum Spirituality)”이란 책(이 책은 릭 워렌이 추천했다)으로 기독교를 뉴에이지화 하고 있는 레너드 스위트는 이머징처치 운동(Emerging Church Movement)을 활발하게 지지하고 있기도 하다. 그는 떼이야르를 “20세기 기독교의 대표적 대변자”라고 했는데, 레너드는 그의 책 “아쿠아 교회”에서 떼이야르를 인용하며 말한다 : “태양이 우리 눈 앞에 있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그리스도는 교회 안에 계신다. 우리는 우리의 조상들이 보았던 것과 같은 태양을 본다. 하지만, 훨씬 더 훌륭한 방법으로 태양을 이해한다.”
그러므로 레너드 스위트 (Leonard Sweet)를 조심하기 바란다. 또한 그는 매튜 폭스, 윌리스 허만, 스콧 펙, 모튼 켈시, 켄 윌버 그리고 뉴에이지 선구자 데이빗 스팽글러를 “뉴라이트(새 빛 New Light)” 리더라고 부르며, 그의 “역할 모델” 또는 “영웅”들이라고 부른다. 나열한 사람들은 모두 그의 책 서문에서 감사를 표한 사람들이다.
특히 데이빗 스펭글러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뉴라이트 리더십의 ‘뉴 셀(New Cell)’의 이해를 명확하게 해주는 것을 도와준 데이빗 스팽글러에게 감사한다.” 레너드 스위트의 절친(?)으로 보이는 데이빗 스팽글러는 어떤 뉴에이저인가? 한 예로, 다음은 레너드 스위트가 자신의 책 “그리스도에 대한 생각(Reflections on the Christ)”에서 우호적으로 인용한 데이빗 스팽글러의(영지주의 “빛의 사자”인) 루시퍼(사탄)에 관한 말이다 : 루시퍼는 우리 안에서 우리를 온전함으로 이끈다. 우리가 온전함의 시대인 뉴에이지로 들어갈 때 우리 각자는 “루시퍼 입문(Luciferic Initiation)”이라고 부르는 지점으로 옮겨진다. 그곳은 각자가 온전함과 빛의 장소로 가는데 꼭 통과해야 하는 문이다.
자료제공 :
한국교회영성총연합회(UCSC)
(크리스찬트리뷴 2010년 6월 7일 기재 기사)
2010-07-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