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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선지자와 예언의 기름부음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소망을 잃지 않는 한 하나님은 약속하신 말씀을 반드시 이루신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찌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합2:3]


ⅶ)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초월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무시하면서까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뜻은 한 영혼도 멸망치 않고 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것이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들을 억지로 끌어다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사도 바울에게 선포되었던 예언처럼 어떤 사람에게 순교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 선포되었다고 하자. 그러나 그 사람이 하나님께 자신은 순교를 하고픈 마음이 전혀 없다는 뜻을 밝히고 또 그가 순교에 대해 사모하는 마음보다 두려움, 걱정, 심지어 하나님께 대한 원망의 마음까지 갖게 된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의 자유 의지를 존중하여 그 말씀의 촛대를 다른 사람에게 옮기실 수 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에게 강압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으신다.



ⅷ) 잘못된 해석은 큰 혼동을 초래한다
예언을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를 정확하게 해석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큰 혼동을 초래할 수 있다.
개인 예언을 들은 후에는 반드시 그 예언의 말씀을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혼자서 임의대로 해석하기보다 영적 멘토의 지도하에 올바른 해석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예언의 해석은 우리가 좋을 대로 생각하거나 어떤 상황에 적절하게 끼워 맞추는 식의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반드시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말씀하신 뜻을 정확히 알아내야 한다. 이것은 예언을 받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다.


한 예로 유대인들은 구약의 선지자를 통해 메시아에 대한 여러 예언 말씀을 들어왔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이 기대하는 메시아가 다윗과 같이 화려한 왕의 모습으로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코 자신들의 왕이 마굿간에서 태어나거나 목수의 아들 신분으로 나타나거나 십자가에 죽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그들은 자신들이 좋을 대로 생각하고 예언의 말씀을 해석했다. 이로 인해 발생한 사건이 바로 가룟 유다의 배신이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위대한 왕이나 혁명가로 생각하고 좇았다. 결코 십자가의 죽음으로 종지부를 찍는 나약한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가룟 유다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고 이별을 고하는 순간 예수님을 배신하고 말았다.
반면 현자(동방에서 온 박사, Magi)들과 목동들은 자신의 고정관념이나 사고방식을 의지하지 않고 예수님의 존재를 말씀 그대로 믿었다.


예언을 해석할 때와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을 때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예언의 말씀이 성령의 감동 감화로 이루어졌음을 알고 성령님의 인도함 가운데 말씀을 받아들이고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즉 성령의 감동을 받을 수 있는 통로가 막혀버리면 아무리 위대한 예언자와 훌륭한 영적 스승이 곁에 있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렘38:19], [왕상22:8].



ⅸ) 예언자는 경배나 칭송의 대상이 아니다
때로 어떤 사람들은 예언자를 마치 하나님이라도 되는 듯 떠받들고 심지어 경배를 하는 경우도 있다. 바울과 바나바가 표적과 기사를 행할 때 사람들이 그들을 신격화하며 경배하려던 일이 있었다[행14:11-15]. 그러나 예언자는 하나님 말씀의 대언자일 뿐이다.
놀랍고 생명력 넘치는 메시지는 예언자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예언자를 통해 전달된다. 그러므로 예언을 하는 자나 예언을 듣는 자 모두 초점을 예수님께만 맞추고 결코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8) 예언에 대한 잘못된 태도와 오해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은 불순종의 죄를 지은 후 심한 고통 가운데 살았다. 사울 왕에게서 하나님의 신이 떠나고 악신이 들려 살아가게 된다.
하나님은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멈추셨으며 그에게는 하나님의 음성을 대변할 사람도 없었다. 사무엘 선지자는 죽을 때까지 사울 왕을 만나지 않았다. 한마디로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삼상18:12]. 그러던 어느 날 사울 왕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매우 위태로운 지경에 처하게 된다. 누군가의 도움을 구하고 싶고 음성을 듣고 싶었지만 어느 곳에서도 도움을 구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신접한 여인을 찾아간다[삼상28:7-8]. 그리고 사무엘을 불러올리라고 여인에게 명한다[삼상28:11].


물론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사울 왕이 신접한 여인을 통해 사무엘 선지자를 불러 올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이교적 사상이며, 이러한 태도는 사울 왕이 잘못된 신관을 가지고 있고 건전치 못한 신앙관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예언자에게 물어라, 최종태. 1999. p.281] 그런데 정말 신접한 여인을 통해 사무엘 선지자가 나타난다. 그리고 사울 왕과 대화도 나눈다. 사울 왕은 분명 그 사람이 사무엘 선지자임을 확신하고 대화를 나누었지만 신접한 여인을 통해 올라온 사람의 정체는 분명 사무엘 선지자의 영은 아니었다. 그것은 귀신들의 장난일 뿐이다.


오늘날도 예언에 대해 잘못된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나름대로 이름이 알려진 예언자를 찾아가 돈, 물품 공세를 펼치며 마치 점을 치듯이 예언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이런 것을 좋아하고 추구하는 사람들을 위해 양심에 화인을 맞은 거짓 선지자들이 사람들의 귀에 듣기 좋은 말들을 하며 많은 믿는 자들을 미혹하고 있다.
또한 크리스천들 중에서도 점집, 절, 무당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장래 일이나 중요한 일의 결정에 대해 묻고 방향을 제시해 주기를 요구한다. 그러나 이것은 크게 회개해야 할 죄악들이다.


또한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유행하는 별자리 점, 혈액형 점, 관상, 사주, 손금, 토정비결, 오늘의 운세, 부적 등도 모두 다 이방 신을 좇는 나쁜 것들로부터 유래된 것이므로 철저하게 배격해야 한다.
악의 세력들은 잠시잠깐 우리를 속이며 미혹할 수 있지만 우리의 장래 일을 결정하거나 미래를 정확하게 맞출 능력은 없다. 또한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도 없고 오히려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면 혼란에 빠지며 말씀에서 벗어난 죄의 길을 가게 된다.
성경은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말한다[살전5: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예언 말씀에 대하여 정확한 지식과 지각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단의 궤계를 잘 분별하고 나가야 한다.
진정 하나님이 주시는 예언의 말씀이 우리에게 다가오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힘쓰게 되고 삶의 비전과 기도 제목이 달라지게 되며 하나님을 더 깊이 사랑하게 된다.


때로 그 말씀들이 단순히 우리의 의식주를 해결하는 말씀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오는 사랑의 메시지이기에 우리는 더욱 감사하게 되고 그 사랑을 삶의 모든 부분들에서 만끽하게 된다.
하나님이 주시는 꿈과 비전, 소망을 품고 기대는 하되 미래 일에 대하여 도가 지나친 관심은 갖지 말라. 예언은 족집게 점이나 정해진 운명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9) 예언의 성취와 응답의 시기
예언이 성취되는 시기는 우리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어떤 면에서는 예언이 응답 받는 시기를 결정짓는데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이기도 하다.
순종의 여부에 따라, 영적 성장과 성숙의 여부에 따라 주위 환경과 사람들의 변화의 여부에 따라 응답의 시기는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은 가장 좋은 시기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신다는 것이며, 다소 더디고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가장 최선의 것을 주신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예언의 말씀을 들은 후 우리는 절대로 조급한 마음이나 서두르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된다. 또한 예언의 말씀을 들은 후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그저 좋은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잘못된 태도이다.
어떤 경우 사단은 하나님의 응답을 가로막음으로 우리를 좌절케 만드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다니엘서를 통하여 다니엘의 기도가 응답 받는 것을 가로막았던 바사국군의 예화를 알고 있다.


“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폴청예언선지자정바울 목사정바울

2010-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