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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수아 선지자 초청Prophet. T. B Joshua 성회를 마치고

2005년 한국치유능력성회와 목회자 컨퍼런스를 통해 역사하신 하나님
2005년 5월23일은 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 크나큰 충격과 함께 성경 속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날이었다.

짧은 홍보기간에 그토록 많은 인파가 몰려 올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의 사역에 관한 비디오와 CD가 큰 역할을 해주었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이 성회가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자들과 치료하실 자들을 부르시는 집회였음을 우리는 알 수 있었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찾아온 하나님에 대해 갈급한 영혼들. 성회를 개최한 홍준표 목사는 개인의 야욕이 아닌 한국교회와 성도들 그리고 불신자들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전능하심을 전하고, 목회자들에게는 능력의 전이와 환자들에게는 치료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죠수아 선지자(Prophet. T. B Joshua)를 초청했다.

죠수아 선지자 역시 하나님의 감동대로 말씀을 따라 한국교회를 섬기고 사역했가고 볼 수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이 없이는 일하시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의 감동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 철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믿음을 보시고"라는 말씀처럼, 죠수아 선지자는 예수님께서 사역하신 본을 따라 철저하게 자신의 사역을 이끌어 가고 있었다. 불쌍해서라도 한번쯤 환자의 소원을 들어 손을 얹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우리 모두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우리와 다른 사역을 하고 있었다.

첫날부터 체육관 바닥을 채우고 2층까지 사람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찬양단의 열정적인 찬양과 함께 춤을 추며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고 전능하신 그분의 영광을 사모하는 수많은 갈급한 심령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각종 환자들, 전국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수많은 환자들로 환자구역은 넘치기 시작하였다.

죠수아의 스텝들은 환자들을 분류하고 기도 받을 수 있는 번호표를 나누어주고 인터뷰를 하기 시작하였다.

모든 환자를 기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방법대로 선별하여 기도 받을 순서를 정하고 있었다.

체육관 로비에는 환자들과 기도 받을 사람들로 넘치기 시작하여 인산인해를 이룬 것이다.

죠수아 선지자가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다. 남아공의 젊은 선교사 송영진 목사님의 맑고 깨끗한 목소리의 통역은 우리의 염려를 한순간에 날려버렸다.

검은 피부의 아프리카의 하나님의 사람이 불을 토하며 말씀을 전하자 장내는 기름부음과 주님의 임재로 충만해지기 시작하였다.

카메라 다섯 대와 지미집을 동원한 음향, 영상 팀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각 안내위원들과 사역위원들은 긴장하기 시작하였다. 죠수아의 말씀이 끝나고 환자를 위한 기도 사역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질서 속에 사역은 시작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스크린을 통하여 사역을 지켜보고 탄성을 지르기 시작하였다.

죠수아 선지자와 홍준표 목사가 함께 사역을 해갈 때 놀라운 치유의 기적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공관복음과 사도행전을 통해 보았던 일들이 말씀대로 이뤄지기 시작했다.

그 동안 수많은 외국의 강사들이 다녀갔지만 실제적으로 모두가 눈으로 확증할 수 있는 사역이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죠수아 선지자의 사역들은 더욱 놀랍고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예언과 축사가 따르고 치유가 시작 될 때 모두의 마음은 "이것이 예언이구나", "이것이 축사이구나", "이것이 진정한 치유이다" 라고 느꼈다.

가시적인 사건들이 일어날 때 더욱 놀라워하였고 힐체어 앉아서 들어왔던 중병 환자들이 일어나 걷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귀신이 떠나는 것을 보고 또한 그 자리에서 깁스를 풀어버리고 뛰는 것을 현장에서 볼 수 있는 집회였다.

이튿날에는 환자들이 더욱 몰려오기 시작하고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는 충만한 집회가 되었다.

첫날 하루에 200명 가랑의 사람을 기도사역을 하였고 그 이튿날은 300명, 체육관에서 약 1000명 정도가 죠수아를 통하여 치유와 능력전이를 받았다.

사람들은 '펜사콜라, 토론토, 남미를 다녀 봤지만 실제적인 치유와 축사의 현장을 만족스럽게 볼 수 없었는데, 성경의 말씀대로 이뤄지는 사역을 보게 되니 놀랍다'라고 간증했다. 그 동안 숱하게 넘어지고 자빠지는 기름부음의 사역만을 보았던 이들의 말이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는 그분과 동행하고 있는가?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고 그분을 사슴처럼 시냇물을 찾듯이 갈급해 하고 목말라하는가?

죠수아 선지자는 말한다. "Daily time with God."

"당신은 날마다 그분과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까?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까? 그것이 능력의 길이랍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님을 믿습니까? 말씀대로, 감동대로 손을 얹고 사역을 합니까? 환자가 치료되는 것이 믿어집니까? 치료되는 것이 눈에 보입니까?"

죠수아의 메시지는 우리에게 계속 물음표(?)를 던져 줍니다. 그리고 또 그는 말합니다.

"I am not the healer. I only know the healer. His name is Jesus christ."

철저하게 치료자 예수님을 의지하고 성령께서 하시도록 자신을 내어드리는 사역자. 그가 죠수아 선지자였다.

그의 역할은 주님이 찾으시는 환자, 즉 주님이 치유하고자 하는 자들을 찾아 주님의 이름으로 손을 얹고 기도하는, 단지 그는 하나님의 도구일 뿐이었다.

눈으로 보이는 가시적인 치유사역보다도 눈에 보이지 않는 치유사역이 보고되고 있음이 더욱 감사할 일이었다. 뇌성마비에서 당뇨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환자가 치유되었다고 속속 간증들이 접수 되었다.

M목사님은 이번 성회에 자신의 교회 성도 13명을 등록시키고 40일간의 작정기도 끝에 13명의 환자가 모두 치료되는 기적이 있었다고 간증한다.

피부질환이 치료되고 정신병이 치료되는 등 말로 다할 수 없는 치유의 사례가 있었고 또한 초락도 기도원에서 했더 컨퍼런스에서도 놀라운 치유사역은 계속 이어졌다.

많은 목회자들이 능력을 전이 받아 목회현장에서 치유와 부흥의 기쁜 소식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의정부의 A목사, 안산의 K목사, B목사, 또 다른 K목사, I목사, O목사, 성경이 열리고 능력의 배가에 기뻐하는 B목사 등 수없이 많은 전이의 기쁜 소식들이 들려왔다.

하나님 앞에 마음을 비우고 진정한 목자의 심정을 구했던 많은 분들을 하나님은 만나주신 것이다.

임파테션을 받기를 사모했던 많은 목회자들, 그들은 주님의 능력, 사랑, 긍휼, 용서, 인내, 많은 은혜들 중에서 무엇을 전이 받기 원했을까요?

모두가 치유의 능력을 받고 예언, 그리고 축사의 권능을 받고자 오지 않았을까? 아니면 사랑의 은사를 전이 받기 위해 왔을까? 인내하시는 주님의 은사를 받기 위한 자가 있었을까? 용서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구한 자가 있었을까? 죠수아처럼 하나님과 함께 하는 그의 삶을 구하는 자가 있었을까? 영혼 구령의 열정을 구한 자가 있었을까?

그러나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 하나님은 하나님의 것을 아무에게나 주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것이 우리에게 내려오기 위해 먼저 준비해야 될 것은 바로 그분의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의 마음을 가질 때 우리가 구하는 모든 것들은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오지 않을까?

하나님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자들을 찾고 계셨던 것이다.

죠수아 선지자는 'Mr. 죠수아'와 'The man of God T. B 죠수아'의 시각에 대하여 설교했다.

육적인 시각과 영적인 시각의 차이점에서 볼 때 그는 인간이다. 평범한 흑인이며 40대의 목회자이다. 실수도 있고 인간의 한계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붙잡고 있을 때 그는 인간이 갖는 그 이상의 놀라운 능력과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다.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는 능력과 권세를 그분이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영적인 '무엇'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무엇일까? 그는 바로 '하나님의 사람'(The man of God)이라는 것이다. 우리도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의 사람처럼 사역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다.

성경은 피조물들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들이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다고 교훈한다.

오늘도 수많은 환자들이 이 병원 저 병원에서 죽어간다. 살아나는 사람도 있고 죽어 가는 환자도 있다. 하나님의 경륜 속에서 인류의 역사는 진행되어가고 있다.

죽어가는 자들도 살아가는 자들도 하나님의 경륜가운데 기록되어 가고 있다.

삶을 살면서 안타까운 때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어 부모가 병으로 죽어갈 때 자식에게는 그것이 가장 크고 절박한 안타까움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우리 부모를 모른 척 하실까? 왜 하나님은 그 많은 환자들을 모른 척 하실까?

죠수아목사

2005-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