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서 빼앗은 노획물로 교회를 건축해 가신다
하나님의 집은 전쟁을 통해서 건축된다
전쟁에서 빼앗은 노획물로 교회를 건축해 가신다 "대상26:27 저희가 싸울 때에 노략하여 얻은 물건 중에서 구별하여 드려 여호와의 전을 중수하게 한 것이며."
목회를 하면서 신실하게 예수믿는 분들인데도 일이 잘 안풀려서 매일 기도할 수밖에 없고 주의 전에 모여 몸된 교회를 위해 봉사할 수밖에 없는가, 오히려 모든 일이 잘 풀리는 분들은 기도회도 잘 안 나오고 헌금생활도 잘 안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에 고민해보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집은 전쟁을 통해서 건축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쟁에서 노획한 것으로 건축하십니다. 다윗이 솔로몬에게 준 건축 재료들은 모두 전쟁에서 노획한 것입니다.
그 성전이 완공되었을 때 그것은 전쟁을 모두 이신 승리의 기념관이었습니다.
성전 건축에 쓰인 재료는 사방을 완전히 정복했다는 사실을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성전 건축에 사용된 은, 금, 보석은 모두 전쟁을 치르면서 얻어낸 것이었습니다. 구약에 있는 사실은 신약에서도 사실입니다. 솔로몬보다 위대하시며, 다윗의 더 나은 아들이신 우리 주님은 "이 곳에 계시며" 자신과 성도들이 함께 치르는 전쟁을 통해 얻는 것으로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십니다.
①주님의 교회가 완성되려면 전쟁을 마쳐야합니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말씀하십니다. "대상17:9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저희를 심고 저희로 자기 곳에 거하여 다시는 옮기지 않게 하며 악한 유로 전과 같이 저희를 해하지 못하게 하여". 여기서 주님은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던 재판관(사사:judge)들을 세우신 것은 여호수아 시대에 다 정복하지 못한 것을 정복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여호수아가 지도자로 있을 때 가나안 땅의 모든 민족을 진멸하고 모든 원수를 평정하기를 기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대적(對敵)을 그 땅에 남겨 두고 타협하기까지 했습니다.
원수를 몰아내지 못함으로써 비참한 상황에 빠진 이스라엘을 구출해내기 위하여 하나님은 재판관(사사)들을 세우신 것입니다. 그렇지만 재판관(사사)들도 그 일을 해내지 못했습니다. 사사기에는 그 일을 완성하지 못한 서글픈 이야기가 적혀 있습니다. 완전 정복에 실패했던 일을 만회하라고 재판관들을 세웠지만 그들 역시 그 일을 마무리 짓지 못했던 것입니다.
역대상 18장과 19장에는 대단히 흥미롭고 의미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나님의 집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재판관들이 정복하지 못했던 대적들을 섬멸하라고 구체적이고 강한 명령을 하십니다. 그 내용이 위의 두 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곳을 읽어보면 사사기에 기록되었던 나라와 민족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다윗에게는 하나님의 집에 대한 이상(異象)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대적들을 모두 진멸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집이 건축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으로 하여금 모든 대적을 정복하게 함으로써 그 말씀을 이루셨으며, 그 대적들을 없애셨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으로 하여금 모든 대적을 정복하게 하신 후, 다윗은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려던 계획을 솔로몬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리고 변방에 있는 모든 나라의 정복을 끝내고 전리품취득이 다 끝난 시점인 솔로몬의 때에 드디어 성전 건축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전쟁에서 빼앗은 노획물들이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는 재료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을 지을 재료들이 대적들의 손에 있었기 때문에 그 집을 건축하려면 먼저 대적을 정복해야만 했습니다.
교회를 완성시키시기 위해서 모든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시는 원리입니다. 지금의 전쟁에서 교회를 세워야하는 목표가 있다면 그 사업과 그 자녀는 승리하게 하실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②마음의 성전이루는데는 양적인 면과 영적인면 두 가지를 다 이루시려고 전쟁하게하십니다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는 일에는 두 가지 면이 있습니다. 우선 수에 관련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을 건축한다고 할 때, 사람들이 모이고, 구원을 받아 교회에 더해지는 면을 생각합니다. 진리 가운데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수가 얼마나 되느냐 하는 등 베드로가 썼듯이
벧전2: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벧전2:5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벧전2:6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벧전2: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라고 한 말씀처럼 사람의 수(數)에 관련하여 교회의 건축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개개의 생기 넘치는 돌이 모여지고 그것이 영적인 건물로 건축된다는 양적(量的)인 면을 우선 생각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 돌들은 많은 연단을 거쳐서 전쟁을 거쳐서 다듬어진 말씀을 먹은 자들의 반석 같은 믿음입니다.
예수를 마귀가 시험할 때에(마4장)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했는데 그 돌이란 원어는 다듬어지지 않은 돌을 말합니다.
즉 마귀는 연단통과해보지 않은, 그런 체험 없는 돌 가지고 예수의 몸을 완성해 보라고 하지만 예수는 연단 통과한, 십자가 통과한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한다고 응수하십니다.
우리들의 교회가 연수를 거듭해가면서 새로운 성도들이 모여드는데 연단을 거치지 않은 성도들이 여러 명 함께 왔다가 기득권을 갖지못하게 되면 함께 수를 이루어 떠나게 되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교회는 영적전쟁의 고난을 지불하기위해 철야로 기도하고 눈물로 봉사하고 또한 교회의 선교와 성장을 방해하는 부정적인 무리들을 배척안하고 끝까지 사랑하면서 함께 이끌고 가야하는 사랑의 전쟁터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랑과 용서의 싸움을 자기가 십자가 지면서 희생하면 그 승리의 대가로 물질도주시고 자녀축복도 시간도, 그리고 안 풀리던 문제도 해결해 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전쟁에서 그 대가로 주시는 노획물이기도 합니다.
그것으로 주님의 성전을 이루는데 에 사용하게 됩니다.
주님의 집을 건축하는 데는 양적인 면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두 면의 한 부분에 불과합니다. 다른 면도 똑같이 중요합니다. 사실 다른 부분이 배제된다면 아주 형편없는 건축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는데 있어서 고려해야 할 또 다른 면이란 영적이며 도덕적인 면을 말합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뿐이라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하나님의 집은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모임은 있어도 교회는 없는 상황이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많아도 영적으로 하나님의 집은 건축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은 양적인 면도 있지만 영적이며 도덕적인 면도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하나님의 집에는 일종의 인격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인격이 하나님의 집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그 인격을 그 머리이신 분으로부터 받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 머리이신 주 예수님의 인격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아무리 많아도 그런 표현이 없는 상태라면 무엇인가 부족한 것입니다. 주님이 자신의 이름을 자신에게 속한 사람들에게 주시는 때가! 옵니다. 새 이름을 새긴 흰 돌을 받는 때가 온다는 말입니다. 그 때 우리교회는 새 이름을 받게 될 것이며, 우리는 그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가 되며, 그의 이름이 우리의 이마에 있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언어입니다. 그 실제 의미는 주님의 사람들이 주님을 온전하게 표현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볼 때, 그들 가운데서 주님을 보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 가운데서 주님을 깊이 접하게 되며, 주님의 증거가 너무도 뚜렷하여, 그들을 대하는 순간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인격이라고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서 주님을 만나고, 그들을 만남으로써 주님을 뵙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주님이 주님의 백성을 통하여 온 우주 안에 표현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은 주님의 인격입니다.
주님의 이름이 나타내는 바가 영적으로 또 도덕적으로 그들 위에 머물 것이며, 그들은 주님의 인격을 닮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함께 주님의 인격과 본성을 온 우주 안에 온전히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고 해서 주님 자신이 불필요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들은 주님이 온 우주 안에 자? 탔?드러내는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 다니긴하나 아직 변화되지 못한 모습을 가진 성도들이 공동체에 들어와서 깎이는 말씀으로 부족한 인격들을 변화시키는 전쟁
2004-1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