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개혁의 가면을 쓴’ 가증스런 두 얼굴의 기독 언론
교계의 언론 플레이, 세상 언론보다 더 하다
일방적 편파보도와 객관성을 가장한 이중 잣대 심각 ‘정경유착’, 그 질기고도 깊은 뿌리는 오랜 세월 명맥을 유지해 왔다. 잘 나가는 기업들은 자기 기업의 생명을 건강하고 오래 지속시켜줄 정치인 혹은 잘 나가는 다른 기업들과 연계한다. 정치인 역시 금전적으로 도울 수 있는 실질적인 협력자를 기업들 가운데 물색한다.
서로 조건이 맞는 상대가 나타나면 어떤 방법으로든 하나가 되어 연합한다. 속된 말로 끼리끼리 모이고 끼리끼리 어울린다. 물론 그 관계는 서로 유익이 될 때까지만 유효하다.
그리고 이들과 하나되어 공생하는 집단이 있다. 바로 언론이다.
오늘날 몇몇 교회들은 이 관계성을 아주 잘 이용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한국의 모든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기 위한 연합이 아닌, 소수 특정 교회의 몸 부풀리기와 중·소교회 흡수하기를 함께 할 이용가치가 있는 교회 혹은 언론들이 하나가 되어 교회 개혁과 한국 교회 갱신의 거짓 가면을 쓰고 한국 교회를 어지럽히고 있는 것이다.
“내가 붓을 들면 삼일 안에 내각을 세울 수도 무너뜨릴 수도 있다.” 이 말은 런던 타임즈의 어느 주필이 한 말이다. 간단한 말이지만 이는 언론의 위력을 실감케 하는 말이다. 그러나 언론이 그 객관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좌로 혹은 우로 치우치게 되면 빛이 될 수 없고 짠 맛을 잃어 버린다.
그렇다면 교계 언론은 어떻게 중심을 잡으며 나아가야 온전하게 그 역할을 다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참과 거짓을 구분하는 기준은 그것을 말씀에 비추어 볼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령의 생각인지 육신의 생각인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기독 언론 역시 진리를 외치는 성령의 소리가 있을 것이고, 아니면 하나님의 뜻과 대립되는 육신의 소리가 있을 것이다.
이 둘은 극단적으로 나누어질 수밖에 없다. 천국과 지옥 사이에 중간 지점이 없듯이 성령과 육신의 것 사이에도 중간 지점이 없으며, 하나님의 공의와 진리는 인간의 그것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성경 말씀을 볼 때 우리는 교회를 파괴하는 무리들이 흉악한 괴물이나 귀신의 모습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광명의 천사를 가장하고, 진리의 말씀을 내세우며, 의의 일꾼을 가장하여 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특히 예수님 시대에 종교인들은 거룩과 경건의 모양을 하고, 하나님의 공의의 편에 선 것처럼 위장을 하였지만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돌을 던졌다. 언론 역시 성령의 도우심을 받고 성령의 인도를 따르지 않으면 예수님을 살해한 것처럼 성령의 뜻을 거스르고 육신적인 방법대로 나갈 수 밖에 없다.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옳고 정의로운 것 같지만, 실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기쁘게 하는 일들을 자행하고, 그 가운데서 성령의 역사를 짓밟고 말씀을 버리며 교회를 파괴하게 되는 것이다.
때로 타종교나 요란한 세상적인 것에는 한없이 너그러우면서 유독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만 혈안이 되어 성령 훼방에 앞장서고, 성령의 불길 위에 찬 물을 끼얹으며 사단의 지배를 받는 사이비 밥벌이 언론들을 보게 된다.
그들은 스스로 의로운척 착각하며 하나님을 위해 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착각이다.
성령님이 함께 하지 않는 교회는 단지 건물일 뿐이고, 성령님이 함께 하지 않는 언론은 단지 시끄러운 소리일 뿐이다. 교회 개혁의 가면을 쓴 두 얼굴의 가증스런 얼굴이 아닌 진실로 성령님과 함께 하는 기독 언론이 되기를 바란다.
2004-11-15
